큰 키를 한껏 자랑하고 선 빌딩 숲과 그사이를 흐르는 자동차의 물결이 엉켜 있는 소용돌이 너머로 육중하기만 한 법원건물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호령하고 있는 듯하다. 그 육중함에서 눈을 떼고 골목으로 들어서서 찾은 곳, 문 앞에서 맞아주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팻말의 소박함이 우선 신선하게 느껴진다. 주어진 범위를 넘어서서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하는 법을 떠나 우리사회의 많은 모순들이 빚어내는 문제 속으로 뛰어든 이들, 법과 제도의 민주성과 인권의 보장을 위해 법의 일선에서 뛰고 있는 이들이 모인 곳이 바로 민변이다.
올 5월 달로 만 6년을 맞이하게 되는 민변의 역사는 비민주적인 법문화에의 저항이자 사회민주화운동선상에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변호사의 역할을 확대해 온 것이었다. 민변 이전에는 인권변호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분들이 독재와 긴급조치시대의 법정에서 홀로 싸웠다. 이돈명, 한승헌, 홍성우, 황인철 변호사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분들이다. 이분들의 노력이 싹을 틔워 85년 조영래, 이상수, 박원 순변호사 등이 정법회를 창립한다. 정법회의 활동시기에는 인권변호사가 수적으로도 늘었고 사회적으로도 큰 변화가 많았다. 이속에서 인권변론활동의 조직화 필요성이 제기되고 정법회가 확대 개편되어 88년 5월 28일 민변창립을 맞게 된다.
민변창립의 의의는 변호사업무의 개별성을 극복하고 조직적 활동을 시작하였다는 것과 그 속에서 변호사운동을 사회민주화운동에 접목시켰다는 점, 일반운동조직과 차별되는 법적 전문성을 가진 제도개선활동을 벌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51명의 회원으로 시작되었던 민변은 이제 부산경남지부를 포함하여 162명의 회원을 가진 조직으로 성장하였고 그간 회원들의 손발을 거친 사건들은 우리 시대의 기록이 될 것들이다. 주요조직사건이 모두 안기부를 거쳤다면 또한 민변을 거쳤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영희 교수 방북취재계획 사건, 화가 홍성담사건, 서울사회과학연구소사건,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제목만으로도 굵직굵직한 사건들 뿐 아니라 국가보안법, 집시법 및 화염병 처벌법, 노동법에 관련된 사건 등을 통하여 수많은 양심수의 변론을 도맡아 해왔다.
그렇다고 민변의 활동이 변론활동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변론활동이 기본적인 사업이라면 그 외에도 다음과 같은 활동들이 있어왔다.
첫째, 인권침해에 대한 실태조사사업이다. 88년 사당동 강제철거 진상조사, 구치소 및 교도소 내 인권상황 설문조사 등 20여 차례 진상조사단을 파견한 바 있다. 둘째, 법률 및 법제도에 대한 조사연구사업이다. 회원들의 관심분야에 따라 구성된 8개 분과가 참여하여 주제발표와 토론을 벌이는 금요세미나가 매주 열리고 있다. 회원들 중에는 국가보안법, 행형법, 국제인권법 등에 관심을 가지고 파고드는 이들도 많이 있다. 이런 연구활동에 기반 하여 ‘반민주 악법 개폐 의견서’등 각종 보고서의 발간, ‘한국행형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토론회’, ‘국가보안법 토론회’ 등 수 차례의 토론회, 공청회 개최를 한 바 있다. 셋째, 인권향상을 위한 여론 형성사업으로서 ‘서울민사지방법원의 단독판사들의 사법부개혁에 대한 의견서를 지지하며 사법부개혁을 촉구하는 성명서 발표’ 등을 통해 대안을 제시하고 정의로운 행동에 대한 국민의 지지와 성원을 모으는 노력을 하였다. 넷째, 연대활동을 통해 인권옹호를 위한 각종 활동에 참여해왔고, 세계인권대회에 참여하여 ‘아시아국가들의 국가보안법 철폐 심포지엄’을 주최하는 등 다른 나라 법률가단체와의 연대, 유엔을 비롯한 국제인권보호제도의 이용에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인권의 실상」, 기관지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을 비롯한 각종 출판사업 등 민변의 활동은 인권의 바다에서 먼 거리를 항해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그 항해가 6년을 맞이한 지금 민변활동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진지한 재조명의 필요성이 회원들간에 제기되고 있다. 민변이 법정 안에서만이 아니라 법정의 안과 밖, 사회속에서 우리의 인권을 고민해 온 만큼 현시기의 다양한 변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지금까지의 바쁜 발걸음을 정리해보며 앞으로 활동의 정기성, 계획성, 일상성을 강화할 방법을 찾아나가고자 한다.
법의 문 밖에서 고통받아온 이들, 그리고 이제 그 법의 주인이 되어 제 권리를 찾아 나가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과정 속에서 민변이 가진 전문성과 그 잠재성이 더욱 더 발현되기를 열린사회의 변호인과 사회구성원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다.
< [인권운동사랑방] 류은숙 >
- 159호
- 류은숙
- 1994-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