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다가 혹은 지하철에서나 버스에서 흔히 경험하는 일이 있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앵벌이라는 이름으로 구걸이나 강매를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벌어지는 일이다. 그 대부분은 장애인이거나 장애를 가장한 사람들이다. 순순히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사람이 있고 저런 사람은 도와줘서 안 된다고 흥분해서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밥을 먹다가 때아닌 격론을 벌이게 된다. “사지가 멀쩡하면 무슨 일이든지 노동을 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니냐, 몇 푼의 동정이 오히려 저 사람들을 망친다”는 주장이 목소리를 높일라치면 “그래도 나는 돈이 있으면 꼭 사준다”고 은근히 자신의 자선을 자랑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그러다가 너무 자주 겪는 일이기에 귀찮아서 동전 하나로 해결하고 마는 것이 대부분이다.
왜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로서 장애인을 만날 수 없는 것일까? 똑같은 승객으로서 지하철과 기차와 시내버스를 탈 수 없는 것일까? 전문가거나 떳떳한 직업을 가진 장애인은 왜 뉴스의 초점이 되는 것일까?
오늘 만나본 「장애인한가족협회」가 소망하는 세상의 모습은 한마디로 ‘장애인이 노동할 수 있는 사회’이다. 장애인의 권익향상을 위한 정책이나 이론연구, 실태조사, 복지제도 등등 무엇이나 중요하고 시급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장애인을 품고 있는 사회 그 자체이다. 장애인의 노동가능성을 인정하고 보장하는 사회, 전혀 노동능력이 없는 장애인이라 할 지라도 그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식되고 그에 걸 맞는 보호를 받는 사회, 보통사람의 생산력의 10%도 발휘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의 ‘가치’를 평가해줄 수 있는 사회인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고 구호나 캠페인, 지원금 얼마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사회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장애인 스스로의 자세전환도 중요하고 다른 누군가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이 먼저 뭉쳐야 한다는 생각에서 장애인한가족협회는 출발하게 되었다.
현 조직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몇 차례의 변화가 있었다. 먼저 81년 청년장애인을 중심으로 시작된 “밀알들”이 있었고, 이 모임이 91년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또 한편으론 ‘울림터’라는 동아리에서 출발한 장애인운동청년연합회(91년 창립)가 존재했었다. 이 두 단체가 93년 8월 15일 통합하여 현 조직을 이루게 되었다. 현재 서울, 경기, 대전, 광주, 강원, 제주, 충남, 경남에 8개 지부를 두고 있고 각 지부마다 100여명의 회원들이 있다. 회원으로 가입하는 데에 장애정도나 종류의 제한은 없으며 장애인문제에 관심 있는 비장애인도 일반회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 중앙사무국에는 회장(황광식), 집행위원장(김대성)과 청년·학생특별위원회, 조직·교육부, 편집·출판국, 대외협력국, 재정사업국의 4개 부서와 연구실이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업들을 몇 가지 살펴보면 우선 ‘새날도서방’의 운영을 들 수 있다. 새날도서방은 장애인들에게 자료대여신청을 받아서 발송을 해준다. 이때 신청 받은 책과 반환봉투를 함께 넣어서 발송하는데 처음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방문배달을 하며 장애인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으나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우편발송으로 바뀌었다. 새날도서방에서는 ꡔ새날ꡕ지를 매월 발간하고 있다. 새날도서방과 더불어 일상적 사업으로 매주 일요일 정립회관에서 ‘일요운동회’라는 이름의 생활체육을 한다.
몹시도 더웠던 올 여름, 서울시내를 누비며 장애인 대학생 실태조사를 했다. 실태조사를 할 때마다 느끼는 문제지만 우리사회가 ‘장애인’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편의상 추정되는 장애인의 숫자, 그들의 삶! 이번 조사에서도 관계부처, 학교당국, 학생처, 과조교 그 누구도 모르고 파악하고 있지 않은 장애인 대학생을 찾아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다. 현재 1백20명 정도를 파악했으며 그 조사결과에 대한 보고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그리고 이번 달 28일 자원활동분과가 직장인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데 주 1회의 봉사와 함께 고민하고 나누는 삶을 시작하게 된다.
이런 사업들을 기획하는 것은 연구실로 장애인운동 관련 자료 분류작업과 돌발적 사안에 대한 대처, 장애인관계법에 대한 연구작업, 장애인운동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고민하는 곳이다. 요즘 주로 고민하는 것은 ‘지역사업’으로 특히 청년학생특별위원회와 전국특수교육학과대학생연합회, 자원활동연합회를 중심으로 구성된 「장애인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공동사업운영위원회」가 그 일을 맡고 있다. 지역사업이 중요한 이유는 그간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가 4백만 장애인의 문제를 포괄하며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면을 벗어나 구체적인 공간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지역사업의 내용에는 지역선정과 그 지역 장애인에 대한 실태조사, 장애관련 활동인력조사, 지역야학 및 공부방 시범운영, 활동사례집 기획 등이 있고 장애인만이 아니라 그 가족들의 문제에 접근하고 가족에 대한 교육도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그 동안 이 사업을 위하여 간담회와 공동세미나, 장애인·학생 대동제를 가진바 있으며 그것을 통해 장애인운동에 대한 시각 차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각 단체의 역할을 고민해왔다.
장애인한가족협회는 그간 싸울 일이 많았다. 장애인관련시설의 비리를 폭로하며 무지무지 속상했던 싸움, 장애인관련시설과 학교건립을 반대하는 지역사회의 편견에 맞선 서러운 싸움, 장애인고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시행 안에 등돌린 기업에 맞서는 버거운 싸움, 「사회복지예산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에 참여하고 우리사회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함께 하는 싸움 등을 그간 휠체어를 타고 휠체어를 가로막은 보도의 높은 턱을 뒷사람의 힘으로 밀고 넘으며 해왔다. 많은 사람이 지쳐나갔고 지금도 지쳐가고 있는데 사회는 변할 줄을 모른다. 같이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일터로 가는 세상, 내 동네에 장애인의 학교를 당연시하는 세상은 어디에···. 참사회, 참 복지, 참사랑의 구호가 신명나게 외쳐질 세상은···.
<「인권운동사랑방」 류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