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추석, 헤어져 살던 이들이 고향에 모여 못 다한 정을 나누는 민족의 대표적인 명절이다. 즐거워야 할 이런 날, 보다 괴롭게 맞아야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고아원, 양로원에 있는 이들만이 아니다. 양심수와 그 가족들, 수배자들, 몇십년째 감옥에서 추석을 맞아야 하는 장기수들, 이국 땅에서 온갖 차별을 당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직장을 지키기 위해 현장농성 하는 노동자와 그 가족, 진상규명을 위해 농성장을 지킬 5.18 단체 회원들 등 우리의 추석에는 한이 많이도 배어 있다.
이들 인권피해자들의 추석을 <인권하루소식>이 3회에 걸쳐 찾아 나선다.
민주주의, 조국통일, 인권, 이러저러한 신념을 주장하다가 먼저 간 사람들을 열사라고 부른다.
어느 해던가, 장기수 한분이 출소하여 마침 결혼을 하게 되었다. 오랜 고통의 세월을 감내하고 난 뒤 올리는 결혼이라 의미도 깊었고, 따라서, 유가족들도 그 자리에 가서 한없는 축하를 보냈다. 그러나, 유가족들만이 남은 자리에서 그들은 한바탕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내 자식이 죽지만 않았어도 만나 볼 수도 있고, 결혼을 할 나이인데….”
유가족의 설움은 절절히 만나고 싶은 그리움이 있음에도 만날 수 없다는 데 있다. 또, 아들딸들이 목숨과 바꾼 민주주의, 인권의 현실이 개선되지 않고 점차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이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도 그들의 한이 커지게 하는 요인이다.
추석. 분명 유가족들에게는 남몰래 눈물지어야 하는 날이다. 있어야 자리에 있지 않고, 무덤으로 남은 자식들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이날은 더욱 괴롭다.
정경식 씨는 창원공단의 금성사 노동자였다. 노조문제로 다툼이 있었는데 87년 실종되고 말았다. 그는 실종된 근처 불목산에서 뼈만 남은 채로 발견되었다. 그의 죽음을 두고 회사와 경찰은 자살로 결론지었지만, 이를 믿을 수 없는 그의 어머니는 8년째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뼈를 간직하고 있다.
89년 성남의 한 공장 노조위원장으로 재직중 분신한 김윤기씨의 어머니 정정원(56)씨는 “추석 같은 날이 유가족에겐 없었으면 좋겠어요. 자식 그립다고 눈물이나 짜고 있으면 다른 이들에게 피해 줄 것 같아 속만 더 상하고요.”
이양순(50, 91년 분신한 박승희씨의 어머니)씨도 “우리요, 늘 가슴에 무덤 하나씩 갖고 사는 거지요. 말해 무엇해요”하고 말한다.
이런 유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남은 이들이 앞서간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이 목숨과도 바꾼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하는 것이다.
박정기(67, 고 박종철 부친) 유가협 회장은 “우리가 바라는 게 뭐 있겠어요, 무덤 하나로 남은 우리 자식들의 뜻을 세상 사람들이 하나하나 찾아주는 거죠. 그날이 온다면 우린 어떤 괴로움도 이겨낼 수 있지요.”
이들 유가족들은 추석 아침, 차례를 지내고, 자식들의 묘소를 찾아나설 것이다. 유가족들이 바라는 세상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