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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통신원 특별기고> 5월정신의 예술적 승화-안티비엔날레

인권하루소식 광주통신원인 김미라씨가 보내온 글을 싣습니다. 지면관계로 전제하지 못했음을 알려드립니다(편집자 주).

“광주정신의 역사성을 예술적으로 승화하며, 광주의 세계화를 이룬다”는 광주비엔날레가 20일 화려하게 개막되었다. 국제적인 예술도시로의 발전, 지역경제의 활성화 등 요란한 구호만큼 각종 언론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는 광주비엔날레… 이런 중에 ‘안티-비엔날레’라는 이름을 걸고 광주통일미술제가 열리고 있어 그 현장을 찾아 보았다.

오후 2시 망월동묘지 입구, 평상시와는 다르게 뭔가 있음직한 작은 흥분이 술렁이고 있다. 입구로 들어가는 굴다리부터가 예사롭지 않다고 여긴 것은 80년 시민군의 그림이 크지 않은 벽면을 차지하고 있어서였을까?

주차장 전체가 전시장으로 새 단장하고, 묘역전체는 오색 만장으로 새 옷을 입었다. 앞쪽에 작지 않게 새워진 무대의 걸게 그림이 눈 속으로 쏙 들어온다. ‘투사도’라고 마음대로 그림의 제목을 붙여주며, ‘5.18특별법을 제정하라’는 큼지막한 구호에 눈길을 돌려본다.

80년 5월 이후 두들겨 맞고 감시당하고 파헤쳐지고 도망치는 과정을 수십번 하면서도 악으로 깡으로 지켜오고 가꿔왔던 망월묘역, 오늘만큼 정성스럽고 호사스럽게 단장 받아 본적 있는가 싶은 마음이 들자 무조건 눈물나고 고마운 마음부터 생긴다. 오월의 정신을 이처럼 생생히 보여주고, 아픈 역사를 피부로 느끼게 하는 작품들! “이것이 오월정신의 예술적 승화라는 것이구나”라는 감탄사가 절로 난다.

그래도 궁금하다. 왜 굳이 안티-비엔날레인지.

그래서 통일미술제를 주관한 광주․전남미술인 공동체의 사무국장 전경근 씨의 설명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지난 94년 12월6일 당시 강운태 광주시장이 국제적 예술행사인 비엔날레 유치를 95년 9월20일로 결정했을 때 광주지역의 많은 뜻 있는 미술계 인사들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재검토를 제기했다고 한다.

첫째, 국제적 규모의 행사를 준비하기에는 기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점이다. 비엔날레가 담아야 할 내용, 형식, 예산확보 등의 문제에 대해서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계화를 구호를 쫓는 졸속 행정의 우려가 엿보인다는 점이다.

둘째, 미술계의 의견, 광주시민의 이론수렴의 과정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국제적 규모의 행사를 치룬다고 했을 때 주인 없는 잔치상을 벌여 놓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셋째, 95년은 광주항쟁 15주년이 되는 해인 만큼 5월의 정신을 문화적으로 승화할 수 있는 준비를 탄탄히 해야 한다는 점등이었다.

여러 과정을 통해 위와 같은 문제제기를 해왔지만 이미 결정된 비엔날레는 행정적인 준비과정에 들어갔고, 그래서 비엔날레에서 담지 못하는 내용을 규모는 작지만 우리식대로 -민주성지답게- 펼쳐나가고자 광주통일미술제를 마련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국제예술제라고 해서 무비판적으로 외국작가의 작품을 유치하려는 발상과 그 진행과정, 여러 예산의 낭비, 행사 바로 전까지 도로를 새로 놓느라 북새통이 된 거리를 바라보면서 느꼈던 찜찜함이 바로 연상되어 떠올랐다.

어쨌든 광주를 찾아올 많은 손님들이 그저 관광과 순례가 아니라 뭔가 우리의 역사와 정신을 느끼고 갈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데 대해서 다행스런 마음이 들기도 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내내 생각했다. ‘참으로 소박한 잔치다. 그러나 무게 있는 잔치다. 그리고 고마운 잔치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