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 인간이 법률도 아닌 법에 의해 수십년간 감옥살이를 했다면, 이는 실로 큰 문제다. '국방경비법'의 문제점을 유현석 변호사의 글을 통해 함께 읽어본다.
62년 1월20일 군형법이라는 것이 나오기까지 전까지 의심없이 시행되던 '국방경비법', '해안경비법'이라는 법률은 6.25전쟁 중에 특히위력을 떨치던 법률이다. 이 법률에 의하여 처형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그 수는 알 길도 없거니와 그 중에 얼마나 무고하고 억울한 사람이 있는지는 아마 상상도 못하리라. 그런데 그 '국방경비법'이라는 것이 법률도 아니었다고 하면 놀랄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대한민국 법률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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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8월9일 일본이 포츠담선언을 수락하고 항복하자 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부는 북위 38도선 이남의 조선에 군정을 선포하고 제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을 설립하여 군정법령(제141호부터는 남조선과도정부법령)을 공포·시행하였다. 그 중에는 현재까지도 유효한 것이 있다. 미군정은 48년 3월17일 남조선과도정부법령 제175호로 국회의원선거법을 공포하고 48년 5월10일 제헌국회의원선거를 실시하였으며 국회는 48년 7월12일 대한민국헌법을 제정하고 국회의장 이승만은 7월17일 이 헌법을 공포하였다. 그리고 정부조직법(법률 제1호)도 같은 날 공포·시행되었으며 48년 8월15일에는 정부의 수립을 내외에 선포하였다. 이렇게 하여 대한민국이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법령집을 보면 '국방경비법' '해안경비법'은 48년 7월5일 공포, 48년 8월4일 효력 발생, 법률호수 미상이라고 씌어 있다. 그러나 48년 7월5일 이러한 법률이 공포된 일이 없다.
미군정은 군정법령(남조선과도정부법령) 이외에 46년 8월24일 군정법령 제118호로 창설한 조선과도입법의원에서 제정한 '법률'을 인준, 공포한 일이 있으나 그것은 47년 5월6일 법률 제1호에서 48년 5월19일 법률 제12호(조선과도입법의원의 해산)까지를 제정하였을 뿐이었다.
남조선과도정부법령 제209호(법령 제13호)가 48년 7월3일에 공포되었고, 같은 법령 제210호(동결재산의 해제)가 48년 7월12일에 공포되었으므로 그 중간인 7월5일에 다른 법령이 공포될 수 없고, 더구나 48년 5월20일로써 이미 해산된(법률 제12호) 조선과도입법의원에서 법률을 제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공포된 일이 없는 법률을 법률이라고 하려니까 그 법률호수는 '미상'이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국방경비법을 법률인 양 적용했고, 군법 피적용자인 군인·군속 등은 물론, 국방경비법 제32조(이적), 제33조(간첩)의 죄는 민간인에게도 적용되었다. 국민들은 이것이 법률인 줄 속아서 살아왔고 허구많은 사람들이 그 법률에 의하여 처형되었다.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는 헌법위원회나 헌법재판소에서 판단한다고 하지만 도시 법률인지, 아닌지는 누가 판단할 것일까?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창간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엮음, 역사비평사, 1993
인권하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