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인 동선이에겐 올해 추석도 별 재미없는 휴일일 뿐이다. 오히려 지난해보다 더 힘들고 무서운 시간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철거통지서는 하루가 멀게 계속해서 날라 오고, 아버지마저 병원에 누워 계신다. 그래서 요즘 동선이는 밤이 더욱 무섭다. 엄마, 아버지가 안 계신 집에 언제 철거반원이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동선이네 집은 봉천2동 재개발 지역. 숭실대와 서울대를 잇는 고개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92년 봉천2동 재개발조합이 결성된 뒤, 1천9백여 세대에 달하던 이웃들이 모두 떠나갔고, 동선이네 가족만이 유일하게 남아 힘겨운 생존의 싸움을 벌여 나가고 있다.
동선이의 아버지인 정광해(44) 씨는 속칭 노가다, 건설현장의 미장일로 일당을 벌어서 가족들 생계를 꾸려왔다. 하루하루 일당을 벌어가며 3년간에 걸쳐 힘든 철거투쟁을 벌여온 그는 이제 생계마저도 유지하기 어려운 처지다. 8월 20일 교통사고를 당해 벌써 한달째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이다. 오른쪽 다리가 낫기 위해선 최소 다섯달 이상 입원해 있어야 한다는 1차 진단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처음에 철거 소식을 들었을 때, 정 씨는 주민 대표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고 생업에 열중했지만, 주민들 사이에 정 씨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정 씨는 스스로 힘든 싸움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제 몸마저 성치 못한 가운데 정 씨는 시름을 놓지 못한다. 가족의 생계와 주거 걱정에 답답하다며 "우리에겐 법적으로 가이주단지에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다. 이주비용으로 몇 백만원을 주겠다지만 돈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네 식구 잠자고 생활할 공간만 있으면 그만입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개발조합측은 정 씨 가족에게 최후통첩을 보내왔다. 병원으로 정 씨를 찾아온 조합장 엄한섭(구 의원) 씨는 "이사비용 줄 테니까 이주하라"는 종전 방침을 다시 전달했다. 17일 병상의 정 씨 앞으로는 특별등기 한 통이 날라왔다. "9월15일까지 자진 이주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곧 철거를 시행하겠다"는 강제철거 통지서였다.
"부모는 병원에 있고 아이들만 단 둘이 생활하고 있는 오갈데 없는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하라고…"
지금까지 정 씨의 가족은 주변의 도움으로 근근히 생활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의 대책은 막막하기만 하다. 정 씨가 병상에 누워 있고 부인은 입원수발을 위해 병원을 떠날 수 없는 처지에서 고등학교 1학년인 큰 딸과 막내 동선이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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