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해고노동자 이동렬, 성한기 씨의 편지
지난 여름 명동성당 농성장에서 어느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세상에 태어나 보람된 일, 성취감을 느끼는 일들을 많이 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런 꿈들을 다 접어두고 장렬히 산화하고 싶은 충동만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내 자신이 황폐화되고 가정까지 황폐화 되어가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습니다”
막다른 낭떠러지에 서있는 해고자의 절박한 심정을 밝힌지 4개월만인 지난 11월 10일부터 해고자 문제 해결을 위한 무기한 단식을 시작한지 41일째 60여 Kg의 몸무게가 45Kg으로 줄어든 만큼이나 꽤나 시간이 흐르긴 흐른 것 같습니다.
여러 어르신네들과 수많은 동지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제 이후 싸움의 몫은 우리 것이네, 이 정도면 목숨을 바친 바 진배없네…”라는 눈물어린 요청에 해고자 문제 매듭의 짐을 남겨둔채 단식을 중단하자니까 아쉬움과 함께 온갖 만감이 교차합니다.
단식 기간중 힘들었던 것은 결코 굶주림이 아니었습니다. 노동법 개악을 한다고 난리를 쳐대는 김영삼이도 과거에 23일을 단식하였다 하고, 살인마 전두환이도 감옥에서 정치보복이라며 23일을 단식하는 열성을 보였는데, 이까짓 굶주림이 뭐가 대단하겠습니까? 힘들었던 것은 LG자본의 냉담한 반응이었습니다. 분노가 치솟아 올랐습니다. 복직이 안된다면 정말 이 한 많은 세상 죽음으로 끝내고 싶었습니다. 단식을 한다 해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놈들을 보니 더욱 더 결심이 굳어졌습니다. 다시는 단식을 우습게 여기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는 결의로 죽기로 단식을 지속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두 번이나 실신하여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악착같이 다시 나왔던 것입니다. 결코 두 번 다시 LG자본에 지기가 싫었습니다. 진정 우리가 바랐던 것은 목숨을 거는 단식이었습니다. 이제는 정말이지 이 지긋지긋한 복직투쟁을 장렬히 산화함으로서 끝내고만 싶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어르신들이 그리고 전해투동지들이 왜 LG때문에 죽느냐 이 지독한 LG때문에 목숨을 던진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며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더 큰 투쟁으로 LG를 박살내자고 설득하였습니다. 니가 죽으면 LG만 타격 받는 것이 아니라 니 죽음을 옆에서 방관한 우리가 더 나쁜 사람이 된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에 저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른들, 선배님들을 욕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저희들이 단식으로 LG자본이 얼마나 잔악한지가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하나로 뭉쳐 LG자본을 응징하겠다고 하니 그것을 믿고 단식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사측에 이야기합니다. 아무 조건 없이 단식을 정리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싸움의 시작일 뿐입니다. 다음에는 단식과 같은 느슨한 방법은 결코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경고하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1996년 12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