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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욕망사회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바야흐로 대중소비사회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물건이 넘치고 사람들은 포식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인은 정말 풍부해졌는가? 노동시간은 줄지 않고 있으며 생활은 정신 없이 바빠지는데도 욕구는 충족되지 않고 짜증만 확산되고 있지 않은가? 한편 과잉을 괴로워하는 지구상 인구는 한줌에 지나지 않으며, 그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기아의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이다.

대중소비사회의 상징적 상품들은 대체로 그 과잉 때문에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는 상품들이다. 혹자는 이런 대표적 상품으로서 ① 내구소비재, 특히 자동차 ② 쇠고기와 새우 그리고 ③ 포르노를 꼽는다.

내구소비재의 특징은, 기본적인 생활필수품과는 달리, 사람들이 정말 그 상품이 자기에게 필요한 것인지를 쉽게 판단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생산자는 끊임없이 광고, 세일즈활동, 월부판매 방식 등을 통해 인간에게 본래 필요 없는 것이나 해로운 것에 대한 욕구와 수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나간다. 그 전형적인 예가 자동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는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고 쾌감을 주는 외에 '스테이터스 심벌'로서의 가치를 갖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이점은 특권적 소수자만이 자동차를 보유할 경우에 타당하며 자동차의 대중화에 따르는 '마이 카'시대가 도래함으로써 사정이 크게 달라진다. 우선 자동차의 전면적 보급은 교통사정의 악화를 가져오게 되며 따라서 '편리함'도 '쾌감'도 사라진다. 누구나 다 자동차를 갖게 됨으로써 '스테이터스 심벌'의 가치도 없어진다. 일상적인 교통사고로 인한 누적된 사망자수는 과거 어느 전쟁 사망자수도 능가할 지경에 이르렀고 자동차는 '살인기계'라는 이름을 얻었다. 게다가 자동차는 석유를 비롯한 자원을 낭비하며 대기를 오염시킨다.

자동차 보급에 밀려 대중교통수단은 쇠퇴하고 대중교통수단이 상대적으로 불편해짐으로써 자동차가 필요해진다. 도로를 걷는 일이 위험해지고 공기가 나빠져 사람들은 더욱더 자기만의 안전을 위하여 자동차를 원한다. 마약중독자가 자꾸만 마약을 원하는 것과 같은 악순환이 아닐 수 없다.

18.19세기의 쇠고기가 귀했던 시대 이래 쇠고기는 부와 권력과 민족적 우월과 남성지배를 상징하는 음식물이었다고 한다. 그것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미국 백인들이 서부 대초원을 원주 인디언으로부터 빼앗고 영국자본을 받아들여 대규모로 목축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쇠고기가 대중적으로 보급된 일은 일단 환영할만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현재 대부분의 소가 곡물사료로 사육되고 있는데 그 사료는 10억인 정도의 인간을 먹일 수 있는 분량이라고 한다. 이 사료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소의 증가는 기아 인구의 증가와 함수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게다가 쇠고기를 먹을 수 있는 선진자본주의국 주민과 개들은 쇠고기 섭취로 인한 심장병, 뇌졸중, 암, 당뇨병 등에 (높은 의료비를 쏟아 부으면서) 시달리고 있으며 쇠고기를 먹는 한편 온갖 방법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말세적 현상을 보인다. 오늘날 맥도날도 햄버거는 중남미의 열대우림을 집어삼키면서 무서운 속도로 전세계에 퍼지고 있다.

성의 상품화가 지구를 휩쓸고 있다. 현대세계를 대표하는 대규모 산업중 하나가 포르노산업이다. 미국에서 포르노산업은 보통의 영화나 음반산업을 능가하여 연간 80억달러의 이익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포르노가 아무리 '성의 해방'과 '성의 자유'를 내세워도 그것의 해악은 첫째로 여성을 폄하하면서 (남성)지배와 (여성)종속을 노골적인 성묘사를 통해 미화한다는 데 있다. 또한 포르노는 성적 욕구에 기인하기는 하지만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의사체험에 의하여 성에 대한 욕구불만은 더욱더 커지고 더 강한 자극을 바라는 욕구를 만들어낸다. 성범죄는 늘어나고 악질화된다.

자동차가 선진국에 의한 자원의 낭비를 전제로 하고 쇠고기 소비가 기아와 함께 늘어나듯이 포르노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착취를 그 존립근거로 하여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생산되고 생산이 새로운 욕구를 낳는다. 생산력이 발전함에 따라 욕구는 다양화하며 이런 과정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여러 능력이 발전해간다. 그리하여 미래 어느 날엔가 욕구는 완전히 충족될 것이다. 이런 게 우리 모두의 '희망사항'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부시게 생산량을 늘려가는 현실의 자본주의 속에서 우리는 이런 기대가 어딘가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닫고 있다. 상황이 아무래도 절망적인 것임을 깨닫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자동차를 줄이고 대중교통수단을 늘릴 수 있을까? 쇠고기 소비량을 줄이고 기아를 없애기 위하여 농업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 인위적으로 대중의 욕구를 만들어내는 일을 그만둘 수 있을까? 포르노가 없어질까? 제품들의 모델체인지 주기를 획기적으로 늘리고 제품을 그 수명이 다할 때까지 쓰도록 AS를 보장할 수 있을까? 생산의 증가에 따라 노동시간도 단축할 수 있을까? 도대체 자본주의에는 희망이라는 게 있는 것일까…?

서준식(인권운동사랑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