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오름 > 세계의 인권보고서

[세계의 인권보고서] 누가 돈을 내는가? - 영국 슈퍼마켓은 여성 노동자를 어떻게 빈곤하게 하는가

국제원조행동 영국위원회의 보고서 (2007.4)

WHO PAYS?
How British Supermarkets Are Keeping Women Workers In Poverty
- ActionAid International UK (April 2007)

<번역자 주>

얼마 전, 한국의 한 대형유통업체가 입점 회사의 동의 없이 할인행사를 벌이고 재고품의 판매 책임을 떠넘기는 등 불공정 관행을 일삼아 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대형유통업체의 횡포는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듯하다.
올해 4월 국제원조행동(Action Aid International) 영국위원회는 영국 슈퍼마켓의 국제적인 공급 사슬을 자체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공급업자를 휘두르는 슈퍼마켓의 권력은 개발도상국의 빈민 여성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슈퍼마켓이 공급자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비용과 위험을 전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데 대해 우리는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캠페인 담당자 제니 릭스의 말이다.
「누가 돈을 내는가?」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싼 물건들이 넘쳐나는 부국의 소비 문화가 결국 누구의 희생으로 지탱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국제원조행동은 1972년 설립된 국제적인 반빈곤 단체로서, 현재 42개국에 걸쳐 1,300만 명 이상의 빈민을 돕고 있다. 보고서 본문은 총 70쪽 가량 되지만, 여기서는 보고요약본을 완역해서 싣는다.


영국에서는 매주 3200만 명이 슈퍼마켓에 간다

현대소비사회의 성당 안에는 모든 것이 정성스레 진열돼 있다: 다진 포장육, 씻은 감자, 똑같은 크기와 색깔의 토마토. 그러나 슈퍼마켓 혁명 이면에는 위생 설비를 갖추고 깔끔하게 보이는 소매점의 세계와는 아주 동떨어진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누가 돈을 내는가?」 보고서 표지 [출처] 국제원조행동 영국위원회(www.actionaid.org.uk)

▲ 「누가 돈을 내는가?」 보고서 표지 [출처] 국제원조행동 영국위원회(www.actionaid.org.uk)



이 보고서의 관심은 슈퍼마켓 진열대의 상품과 그 상품을 생산하는 개발도상국 인민을 연결시키는 공급사슬이다. 부국의 소매업 분야가 점점 치열해 지는 가운데 슈퍼마켓이 점점 더 개방적인 개발도상 경제의 공급자를 선별함으로써, 슈퍼마켓의 공급사슬 구조는 최근 몇 년 동안 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슈퍼마켓은 지구 시장에서 점점 더 많은 권력을 갖게 되고, 그 권력을 최대화하기 위해 무엇보다:

· 공급자와 독점적으로 거래하거나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함으로써, 공급자의 의존성을 높인다.
· 정기적으로 공급자 명단에서 ‘탈락시키거나’, 탈락시키겠다고 위협해서, 좀 더 유리한 조건을 끌어낸다.
· 구매력을 높이기 위해 국제적인 구매집단에 함께 가입한다.

슈퍼마켓은 공급자에게 좀 더 저렴한 가격, 좀 더 빠른 배송 시간, 좀 더 큰 유연성을 요구한다. 이를 위한 수단은 주로:

· 비용 이전: 공급자에게 낮은 가격을 강제하고, 종종 소급하여 추가 요금을 덧붙이고, 질적 증가와 생산성 향상을 지불 비용의 증가 없이 요구하는 것이다.
· 위험 이전: 수요의 유형이 예상외로 변할 때 공급자가 그 충격을 받아들이도록 하고, 임박해서 주문하며, 급박하게 세부사항을 확인하거나 바꾸는 것이다. 공급자는 주문량을 채우기 위해 발버둥 치게 되거나, 팔지 못한 잉여물을 계속 쌓아놓게 된다.

원조행동(ActionAid)이 직접 목격한 것은, 우리가 일하는 나라에서 슈퍼마켓이 이러한 권력을 휘두를 때 가장 가난한 노동자들이 받는 영향이었다. 우리는 세 나라의 연구를 통해 적은 대가로 많은 것을 배송하라고 공급자를 압박하는 것이 저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 기본적 인권의 부정이라는 형태로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전가되는지를 설명한다.

특히 여성들은 노동시장과 사회 전체에서 이미 불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공급자가 비용을 내리고 조건을 낮출 때 더욱 취약한 상황에 놓인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실은 값싸고 유순하며 다수를 차지하는 개발도상국의 여성 노동이 있기 때문에, 슈퍼마켓은 비용과 위험의 전가에 몰두함으로써 서로서로 경쟁하면서 임금을 인하하고, 우리에게 더욱 더 빠르게 물품을 공급하면서도 여전히 높은 이윤을 낼 수 있다.

원조행동이 연구해서 발견한 주요한 결과는:

· 넘치는 바나나(GOING BANANAS)

영국 바나나 소매를 특징짓는 가격 전쟁의 영향으로, 코스타리카 대농장 노동자의 불안정한 일자리,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이 증가되어 왔다.

[출처] 「누가 돈을 내는가?」

▲ [출처] 「누가 돈을 내는가?」



영국의 판매 1위 과일에 대한 가격 전쟁이 촉발된 원인은, 공급자에게 더욱 낮은 가격을 요구하고 소비자 수요에 대한 예상이 빗나갔을 때 그 충격을 공급자에게 떠안기는 슈퍼마켓 때문이다. 공급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대다수는 자기 사업의 2/3 이상을 슈퍼마켓 연쇄점 하나에 의존한다. 가격 전쟁은 바나나 산업을 통해 새로운 고용 모델의 확산을 촉진시키는데, 새로운 고용 모델은 시간당 33페니 정도로 낮은 임금, 종종 하루 12시간을 넘기는 노동 시간의 증가, 더 많은 임시직 노동으로의 이동으로 특징지어진다. 여성은 평생 직업에서 밀려나 저임금을 받는 임시직, 성과급 직장으로 내몰리고, 때로는 임금이 너무 낮아 살충제를 공중 살포하는 동안 들판에 남아있어야 하는 등 위험한 행위를 강요당한다.

· 부자들을 위한 저가의류(RAGS TO RICHES)

슈퍼마켓은 영국에서 싼 가격에 열광하는 유행의 선봉에 서 있는데, 이러한 추세는 우리들이 입는 옷을 값싸게 대량으로 만드는 방글라데시에서처럼 필연적으로 의류 노동자의 실질 임금을 폭락시킨다.

[출처] 「누가 돈을 내는가?」

▲ [출처] 「누가 돈을 내는가?」



영국에서 의류 가격의 폭락은 ‘가치(value)’ 의류 업종의 팽창에 주로 기인하며, 이 업종에서 슈퍼마켓은 주된 행위자이다. ‘가치 소매상’(value retailers)의 혜성 같은 등장은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추동된다: 가격을 인하하는 능력, 그리고 유행이나 소비자 수요의 변화에 대한 빠른 반응. 양자 모두를 가능케 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방글라데시 의류 노동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젊은 여성이다. 그녀들은 시간당 5페니도 벌지 못한다;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종종 14시간이 넘도록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하지만, 이 임금은 자기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치 않다.

· 평범해 보이는 견과류(JUST PLAIN NUTS)

캐슈너트 같은 고가 품목까지도 슈퍼마켓의 갈취가 이루어지는데, 이에 대해 껍질을 까는 인도 여성은 빈약한 임금, 불안정한 일자리 및 건강 손상에 관해 익숙하게 토로해 왔다.

[출처] 「누가 돈을 내는가?」

▲ [출처] 「누가 돈을 내는가?」



생산 가격을 줄이라는 영국 슈퍼마켓의 압박은 비공식적이고 심지어 불법적인 가공 작업을 폭발시킨 원인이 되어 왔으며, 그 작업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여성 노동력은 사용자에게 더 나은 대우를 요구할 권리와 기회가 거의 없다. 우리는 인도에서 연구한 결과, 노동자들이 하루 30페니도 받지 못하면서 캐슈너트를 가공하고, 껍질을 까는 동안 나오는 부식성 기름과 굽는 과정에서 누출되는 연기에 노출되어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영국 시장에서 대형 슈퍼마켓의 권력이 증가하는 것은, 개발도상국의 여성노동자를 착취함으로써 가능한 사업 방식의 산물이기도 하고 원동력이기도 하다. 원조행동 같은 단체는 10년이 넘도록 지구적 공급 사슬에 놓여있는 노동자들이 직면한 문제를 조명해 왔다. 매번, 산업과 정부로부터 나오는 반응은 슈퍼마켓 스스로 자정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략이 먹히지 않는다는 좀 더 결정적인 일단의 증거가 매년 새롭게 나온다. 자발적 구상들 중에서 가장 괜찮고 가장 종합적인 윤리무역구상(Ethical Trading Initiative)은 회원사를 충분히 자극하여 이런 부패 행위를 멈추도록 조치를 취하지 못 해왔다. 다른 제도는 더욱 성공적이지 못했다. 좋은 관행을 보여주는 사례가 단편적으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슈퍼마켓이 좀더 정부의 압박을 받지 않는다면, 필요한 개선 조치를 폭넓게 행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원조행동은 슈퍼마켓 불매운동을 요청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독립적인 규제담당관이 제도화되어, 슈퍼마켓과 공급자 사이의 관계를 감시하고, 슈퍼마켓이 자신의 우세한 지위를 남용하지 않도록 확실히 하는 모습을 보기를 원한다. 그 감독관은 진정을 조사하고 기준 위반 시 슈퍼마켓에 제재 조치를 부과할 권한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감독관은 슈퍼마켓이 추구하는 해로운 관행을 없애면서도 공평한 경쟁의 장을 생성하고, 슈퍼마켓이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자발적 구상을 이용할 수 있는 여지를 열 것이다.

슈퍼마켓과 공급자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일은 안정된 일자리, 가격과 노동 조건에 대한 압박 요인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노동자들이 자기 손으로 문제를 다루고,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며, 자신의 고용 조건을 개선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젖히는 데 일조할 것이다.

우리가 매일 슈퍼마켓에서 지출하는 수백만 파운드 이상이 우리가 구매한 것을 생산한 노동자들에게 되돌아간다면, 쇼핑 행위 그 자체가 빈곤을 감소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개발도상국에서 보수가 좋은 노동자들은 지방 생산자로부터 더 많이 사고, 더 많이 저축하며 투자할 것이다. 더 나은 일자리로 인해 사람들, 무엇보다 여성들은 자기 상황에 맞서고 바꾸는 자신감과 권력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발전’이 이루어지는 방식인 것이다.

슈퍼마켓 캠페인의 일환으로 국제원조행동 영국위원회는 쇼핑백을 판매하고  있다. [출처] 국제원조행동 영국위원회(www.actionaid.org.uk)

▲ 슈퍼마켓 캠페인의 일환으로 국제원조행동 영국위원회는 쇼핑백을 판매하고 있다. [출처] 국제원조행동 영국위원회(www.actionaid.org.uk)



원조행동의 제안

영국 정부는

· 독립적인 슈퍼마켓 규제담당관을 세우라, 그 담당관은:
- 해외를 기반으로 한 공급자를 포함하여, 식품공급 전 과정을 따라 슈퍼마켓과 공급자 간의 관계를 모니터하고
- 슈퍼마켓과 공급자들 간의 공정한 경쟁을 보증하는 새로운 규칙을 집행하고
- 어떠한 위반에 대해서도 교정책을 찾고, 지배를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 제기되는 현안을 다루고, 구매 관행에 변화를 책임질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규칙을 검토할 권력을 가지고
- 공급자들에게 엄격하게 비밀이 보장된 진정 절차를 운영하고
- 법적으로 실행 가능한 논쟁 절차를 운영한다.

· 경쟁 제도의 시야를 확장하여, 핵심 분야와 가정, 해외에서 영국 기업들의 구매 관행에 효과적인 모니터링과 규제를 가능하도록 하라.
· 영국 기업들이 그들의 구매 관행이 개발도상국들의 노동자와 생산자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보다 책임을 갖도록, 회사법을 포함한 제도와 법 이외의 영역을 사용하라.

슈퍼마켓에서 옷을 팔면, 판매가격의 70%는 슈퍼마켓이, 27%는 수출업자가 차지하고, 노동자에게는 겨우 3%만이 분배된다. [출처] 「누가 돈을 내는가?」

▲ 슈퍼마켓에서 옷을 팔면, 판매가격의 70%는 슈퍼마켓이, 27%는 수출업자가 차지하고, 노동자에게는 겨우 3%만이 분배된다. [출처] 「누가 돈을 내는가?」



유럽연합은

· 슈퍼마켓 구매력의 해악적 효과를 억제하는 범 유럽연합 차원의 법률 제정을 위해 노력하라.

유엔은

· 회원국들을 독촉하여:
- 기업의 권력 남용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할 의무를 정부에 지우면서, 사회권규약을 비준하고 그것의 이행을 모니터하게 하고
- 여성차별철폐협약 상의 의무를 다하게 한다.

슈퍼마켓은

· 공급사슬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된 모든 노동자의 권리가 존중되도록 보장한다고 공식적으로 약속하라.
· 구매 관행이 노동자와 공급자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 문제를 다룰 구체적인 과정을 밟아라.
· 공급사슬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노출되는 것에 대해 ‘치고 빠지기'(cutting and running) 식으로 대응하지 말라.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공급자, 노동조합, 지역시민사회단체, 정부와 함께 일하라.
덧붙임

◎ 범용, 성희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