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정황조사 외면한 채 수사종결
대기업이 사주했다는 의혹으로 물의를 빚은 바 있는 96년 청주 박민주(29․가명) 씨 성폭행 사건이 영원한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3일 사건담당인 청주지검 관계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현장검증 결과만으론 용의자를 찾을 수 없다”며 사실상 수사를 종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건 초기부터 피해자는 한국타이어(대표이사 홍건희) 신탄진 공장의 노동운동탄압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청주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한국타이어 노동운동가 박 아무개(수배자) 씨를 돕던 피해자는 지난해 5월 괴한 2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단순 성폭행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당시 정황은 피해자의 의혹을 상당부분 뒷받침해주고 있다. 당시 △범인들이 사전에 피해자의 신분을 확인한 뒤 성폭행을 했고 △현금 등 물품피해가 없었으며 △수배자 박 씨의 소재를 물었던 점 △특히 신탄진에 있어야 할 한국타이어 구사대원들이 사건 전후 청주에 자주 등장했다는 정황 등이 그러하다.
이 사건은 지난해 11월 검찰수사가 시작된 뒤 올 3월 수사가 종결됐다가, 지난 8월 여성․노동단체 등의 잇따른 진정에 따라 재수사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그러나 10월말 검찰이 수사를 종결함에 따라 1년만에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러나, 수사종결조치에 대해 피해자 박 씨는 “참고인 조사 등을 통해 정황조사부터 벌였다면 범인의 단서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검찰이 처음부터 사건 해결의 의지가 없는 것 같았다”고 비판했다. 박 씨가 검찰의 조사를 요청한 참고인은 한국타이어 노사협력팀 관리자와 6-7명의 구사대, 한국타이어 해고자측의 전 아무개, 김 아무개 씨 등이지만, 단 한 사람도 검찰조사를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관계자는 “증거도 입증하지 못할 사람들을 참고인으로 부를 필요가 있는가? 박 씨 말은 대부분 거짓말이다”고 말했다.
반면, 박 씨는 “참고인 요청대상인 김 아무개 씨의 경우, 노조 총무부장으로서 회사쪽 기밀이나 구사대의 동향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며, “구사대와의 통화내용을 담은 녹취록도 있지만, 검찰조사가 성의껏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씨에 따르면, 이 녹취록에는 당시 수배자를 잡기 위해 청주에 구사대가 상주하거나 수시로 드나들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이제껏 검찰 수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질 것을 기대해온 박 씨는 “이젠 어떤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할지 막막하다”며 허탈해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