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실질심사 논란, 본질은 ‘인권보호’
국민인권신장을 위한 혁명으로까지 평가받은 영장실질심사제가 퇴보위기에 몰렸다.
올 1월 도입된 영장실질심사제는 ‘불구속 수사와 재판’이라는 원칙 하에 피의자들의 인신구속을 최소화함으로써, 국민인권보장에 일대진전을 이룬 조치였다. 그러나, 시행초기부터 못마땅함을 드러내던 검찰측이 급기야 영장실질심사의 범위를 대폭축소하는 방향으로 형사소송법 개정을 추진하자, 법원이 이에 집단반발하는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
현재 이 논란의 핵심은 ‘인권보호’냐 ‘수사효율’이냐 하는데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법원과 검찰 사이의 밥그릇 싸움인양 본질을 호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어느때보다 언론의 역할이 주목되는 상황이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언론은 입장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일부언론, ‘밥그릇 싸움’ 호도
8개 중앙일간지 가운데 ‘인권보호’ 입장에서 사설을 게재한 언론은 <한겨레>와 <동아일보> 뿐이며, <경향신문>은 오히려 사태의 초점을 흐리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한겨레>는 11일자 사설에서 “영장실질심사제 적용범위를 축소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밝혔고, <동아일보> 10일자 사설 역시 “정권 말기 어지러운 분위기에 편승해 중요한 인권문제와 관련된 법률이 졸속처리되서는 안된다”며 ‘인권보호’가 우선임을 강조했다.
검찰측의 ‘수사낭비’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동아일보>는 “검찰이 주장하는 어려움은 인력확충, 전경활용 등 현실적인 개선방안을 찾아내 해결할 일”이라며 “모처럼 도입한 영장실질심사제도의 후퇴나 개악 쪽으로 추진해서는 안될 말”이라고 일축했다. 또한 “영장실질심사제도는 수사기관의 인신구속 남용을 견제하고 가혹행위를 통한 자백강요를 근절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며 “개정안대로라면, 수사관들이 피의자에게 영장실질심사를 포기하도록 강요할 소지도 있고 심리적으로 위축된 피의자들이 스스로 그만둘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두 언론사의 입장은 영장실질심사제의 목적이 명백히 ‘인권보호’에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반면, <경향신문>은 논란의 본질을 외면한 채 법원과 검찰의 갈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법원의 집단행동은 검찰에 대한 극도의 악감정 때문”(10일자 사설)이라며, 오히려 법원의 집단행동을 비난하는데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향신문>은 “사법부마저 국민들의 혼란과 불안을 부추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목청을 높이면서, 결국 이번 사태를 “사법부의 관료화와 검찰의 독선화가 빚어낸 권한싸움”으로 규정했다.
<중앙일보> <한국일보> <문화일보> 등은 양측의 대립상황을 보여주는 것외에 명확한 입장표명을 삼가고 있으며, <조선일보>는 5일자 기자수첩(김홍진 기자)을 빌려 “어느 쪽이 국민권익보호를 위해 좋은 방향인지 합리적 해결점을 찾으라”며 다소 애매한 충고를 하고 있지만, 역시 양비론의 시각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영장실질심사제가 시행 1년도 채 못돼 좌초될 위기를 맞고 있으나 국민인권신장에 앞장서야 할 대다수 언론들은 침묵 또는 묵인 속에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