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인파가 거리를 메우고 '정치적 권리'를 이야기하는 수많은 집단들이 거리로 나서는 오늘. 여전히 반민주, 반인권의 시대임을 갇힌 몸으로 증언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송두율이다. 송 교수의 입국과 동시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어처구니없게도 '20세기 야만의 시대'로의 회귀, 그것이다. 국가보안법은 그 건재함을 과시하며 반공냉전주의의 망령을 되살려냈고, 수구 반민주 세력과 언론, 검찰, 국정원 등은 이에 맞장구를 치고 무차별적 마녀사냥으로 화답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정에 서게 된 송 교수를 통해 우리는 이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얄팍한 '민주주의와 인권'의 수준을 다시금 깨달아야 했다. 또 그를 향한 언론과 수구세력의 공격 속에서 남북협력, 탈냉전의 시대에 직면하고 있는 거대한 반민주의 실체를 목도하기도 했다. 남북교류와 협력도, 민주와 인권의 기치도 국가보안법 앞에서는 도무지 맥을 쓰지 못했다.
반국가단체를 구성하고, 반국가단체로 잠입·탈출, 회합·통신한 혐의로 송 교수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한 검찰은 송 교수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서열 23위 후보위원이며, 내재적 접근법을 통한 비교사회주의 연구로 친북·이적 활동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9차례에 걸친 재판을 통해 검찰의 이러한 주장은 조목조목 반박되었다. 검찰은 서열 23위라는 주장에 입증할 만한 증거를 제시하지도 못했고, 문제삼은 송 교수의 저술활동은 이미 공인된 연구방법론이었다. '확인할 수 없는 증언 혹은 입증할 증거도 없는 주장, 결코 범죄가 될 수 없는 것에 대한 무리한 법 적용' 등이 검찰의 구형 근거이다. 따라서 송 교수는 무죄로 석방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거 우리는 안타깝게도 국제사회의 권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인권·반민주적 판결을 반복하는 재판부와 수없이 마주해야 했다.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국가보안법이 50여 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까지 그 생명을 유지하는 것에 사법부 역시 그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이제 재판부의 선고만 남겨져 있다. '송 교수 무죄 석방'을 통해 사법부가 늦게나마 '인권의 보루' 역할을 다 할 것을 촉구한다.
- 2541호
- 2004-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