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하나둘 명동거리의 어둠을 밝히기 시작했다. 자유와 평등, 인권의 세상을 염원하는 촛불이다.
10일 저녁 8시경 명동성당 입구에서는 인권운동가 서준식 씨의 석방과 공안탄압 중단을 촉구하며 작은 촛불의식이 거행됐다. 올들어 가장 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80여 명이 참석해 어깨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날은 49주년을 맞는 인권의 날이었다. 2차대전의 참화를 겪은 전세계가 인간의 존엄과 자유․평등의 소중함을 확인하며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한 날이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이날을 경축할 수 없었다.
“인권의 날을 맞는 오늘, 우리의 심정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아직도 소수 권력자들에 의해 평등과 자유, 인권이 유린되는 현실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촛불의식에 앞서 열린 ‘세계인권선언 49주년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은 이같이 밝혔다.
최근 광주대 박지동 교수의 구속, 이장희(<나는야 통일1세대> 저자) 교수에 대한 영장청구, 교과서에 대한 이적성 시비 등 공안탄압이 거세지고, 한편에선 소수 자본가들에 의해 초래된 경제파탄의 책임이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전가되는 현실, 그리고 곧이어 닥치게 될 실업의 위기와 생존권의 위협은 이러한 참담함의 이유였다.
인권의 날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인권운동가 서준식 씨와 9백여 양심수들의 존재 역시 명동성당의 밤공기처럼 차가운 현실의 반영이다.
명동의 참석자들은 결의문을 통해 촉구했다. “이제 49주년 인권의 날을 맞아 ‘결핍과 공포로부터의 자유’라는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으로 돌아가라.”
감옥에 갇힌 인권운동가와 명동에서 촛불을 밝히는 사람들. 이러한 모습이 우리 인권의 자화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