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은 1948년 세계인권선언을 제정․선포한다. 세계2차대전이라는 유래 없는 전쟁의 참상과 대공황의 공포를 뚫고 인류는 인권의 뿌리를 심었다. 두 차례 세계대전과 대공황에서 인류가 겪었던 혹독한 경험은 인권보장을 더 이상 국가주권 안에서 머무를 수 없는, 국제사회의 약속으로 발전시켰고, 그 첫 출발이 ‘세계인권선언’이라는 방식으로 세상에 나왔다. 세계인권선언은 문화·정치·종교․사상적 차이를 넘어 인류 역사상 최초로 국제사회가 합의해 낸 인권문서이지만 몇 가지 문제점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첫째, 세계인권선언은 서유럽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자유주의 인권체계를 계승했다. 세계인권선언을 제정할 당시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 다수는 식민지 상태였기 때문에 초안의 작성과정과 선언채택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비록 대륙을 대표하는 국가들이 불참한 국가의 문화적 전통을 고려했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대표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서유럽 자본주의 인권개념을 세계인권선언으로 수용한 그 정점에 놓여있는 조항이 아마도 17조 재산권 항목일 것이다.
둘째, 총 30조로 구성된 세계인권선언은 권리의 목록 면에서 인권의 상호의존성과 불가분성이 조화롭게 균형감을 갖고 구성되지 못했다. 시민․정치적 권리 영역은 총 19개 조항이지만,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영역은 22조부터 27조까지 총 6개 조항에 불과하다. 또한 사회권의 보장에 있어서도 자유권에 비해 이차적인 권리로 접근한 흔적이 보인다. 22조 사회보장권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각 국의 자원에 따라’ 라는 단서가 붙은 것은 사회권을 ‘기본․보편적’이 아닌 ‘잔여․보충적’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셋째, 세계인권선언에는 ‘가족주의’나 ‘남성중심성’으로 대표되는 가부장적인 질서가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우선, 전문에서 인류 구성원의 공동체를 ‘가족’으로 비유시켜 출발한 것부터 시작해, 1조에서 ‘사람은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한다’거나, 16조에서 가정을 사회의 기초적인 구성단위로 규정하고 있다. 23조 노동권에서 “모든 노동자는 자신과 그 가족에게 인간적 존엄과 합당한 생활을 보장하는 ~ 정당하고 유리한 임금을 받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어 사실상 ‘가족임금제’를 인권의 이름으로 정당화 한다. 남성노동자가 가족을 부양한다는 모델로 구성된 가족임금제는 여성과 청소년의 노동을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시키고, 그 결과 성별, 나이 등에 따른 위계를 인정하게 된다. 가정이 사적영역이고, 공적영역과는 완전히 분리된다는 공/사 이분법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것이 '가족임금제'를 정당화하고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차별은 공식적인 '인권'의 영역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만들며, 가정 내 위치되는 여성과 아동을 계속 보호받는 사람으로 놓음으로써 인권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요구가 인권이다
세계인권선언이 제정 된지 60년이 지난 2008년 또 다른 인권선언이 우리 앞에 있다. 세계인권선언을 넘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의 말로, 우리의 실천으로 만들어지는 인권선언, 저명한 국제법 학자나 외교관, 정치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고 연명하는 인권선언이 마침내 11월 19일 ‘2008 인권선언 포럼’을 통해 드러난다. 문서에 갇힌 인권을 넘어 우리 삶의 질서를 바꿔내는 해방의 언어로 만들기 위한 인권선언에는 무엇이 담겨야 할까?
하나가 아닌 다양성을 수용하는 보편성
첫째, 2008 인권선언은 보편성을 재구성한다.
사실 그동안 인권은 보편적인 권리로 이야기되어 왔지만 인간의 권리를 성인, 백인, 남성, 비장애인의 경험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러한 존재들이 보편성을 가진 사람들이고, 인간의 대표성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때문에 이러한 기준에 맞지 않는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의 경험과 요구는 인권에서 특수하고 잔여적인 권리로 취급되었고, 이는 배제된 많은 사람들을 특수한 존재로, 사회적인 소수자로 만들어내었다. 때문에 보편성이 현실에서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분명히 목도하기도 한다. 권리가 동등하게 나열될 때에는 결국 힘의 논리가 인권을 압도한다.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은~’ 혹은 ‘어느 누구도~’라는 주어로 시작하지만, 이러한 ‘보편’ 뒤에 숨겨진 현실 사회 힘의 역학 관계를 반영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권이 강자의 논리로 환원되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인권의 ‘보편성’은 인권의 속성에서 연유하거나,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거나 타고난 것이라는 권위를 부여받았다.
이렇듯 과거 주류 인권담론이 ‘단일한 보편성’을 얘기했다면, 2008 인권선언이 추구하는 보편성은 ‘지금 여기!’ 구체적 삶의 실존을 담으면서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의 경험을 담고자 한다. 릴레이 인권선언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소수자를 비롯하여 다양한 인권 침해에 놓여있는 사람들의 현실을 드러내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나의 권리가 어떻게 우리의 권리가 되고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의 권리로 연결되는지를 보여주고 싶다.
11월 중 발표될 청소녀/년 인권선언과 성소수자 인권선언(11/22), 이주노동자 인권선언(11/30) 12월 중 발표될 HIV-AIDS 감염인 인권선언(12/1), 장애인 인권선언(12/3), 비정규직 인권선언(12/6), 환자 인권선언(12/6) 이주민 인권선언(12/14) 등 릴레이 인권선언을 통해 발표될 인권선언은 다양한 정체성의 차이에 기초한 경험을 인권의 언어로 만들려는 시도이다. 차이가 위계가 되지 않고, 배타성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 릴레이 인권선언은 횡단대화를 통해 ‘보편성’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러한 취지로 기획된 11월 19일 2008 인권선언 포럼은 서로의 차이를 다양성이라는 숲으로 만들어 평등한 자들의 축제를 만들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들은 해방을 경험할 것이다.
공정함을 지향하는 평등
둘째, 2008 인권선언은 어떤 평등인가를 질문하며 조건과 결과의 평등을 지향한다. 세계인권선언은 2조와 7조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얘기하고 있다. 자유주의 인권관은 평등에 관해 ‘기회의 평등, 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 조치 등’ 단지 차별하지 않음을 통해 이러한 권리를 실현한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차이를 위계화하고 차별이 구조화된 구조와 조건을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현실에서 드러나는 조건과 결과의 평등을 잃고 만다. 차별하지 않는 것이 곧장 평등과 공정함으로 날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시장의 자유가 만능을 떨치고 있는 이때 어떤 평등을 이룰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작은 씨앗을 숨겨놓는 일과 같다. 재산이 없다고 무시당하거나 차별받지 않을 권리, 공정한 경제 질서를 선택할 권리, 장애인이라고 해서 노동에서 배재되지 않을 권리, 여성․청소녀/년 노동이 비공식 노동으로 간주되지 않을 권리, 꼭 필요한 만큼 살만하게 생활에 필요한 공공재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등등 차별금지와 평등권은 2008 인권선언을 관통하는 가치이자 권리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8 인권선언은 차별하지 않을 것을 넘어 평등의 가치를 담으려고 노력했다. 가령, 2008 인권선언 초안 1조에는 생명 존엄에 대한 평등권을 기술하고 있으며 2조에서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10월 6일 발표된 주거권 선언에서는 집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것이 아니라 살 만한 집에 살 수 있는 권리와 국적, 인종, 성별, 장애 등 다양한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연대로부터 오는 힘을 키우자
셋째, 2008 인권선언은 불안정 노동과 빈곤이 심화되는 현실에서 사회적인 고통에 연대한다.
신자유주의는 인간의 존엄함이나 자유라는 보편 가치를 지향한다고는 하지만, 실재로는 매우 편파적이다. 개인의 자유가 시장과 무역의 자유에 의해 보장된다는 가정은 실재로는 사유재산가, 회사, 다국적기업, 금융자본의 이해를 반영한다. 이 가운데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그나마 향유하고 있는 권리를 빼앗기고, 공공재로 인식하던 영역까지 사기업의 권력이 집중되었다. 국정원, 경찰 등 국민을 억압하고 감시하는 국가 영역은 확대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에 필요한 사회복지등 담당하는 국가 영역은 후퇴국면을 맞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이 이 사회에서 정상적인 고용형태로 간주되고 노동자들끼리 계속 경쟁을 부추기면서 분열시킨다.
이렇듯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2008 인권침해 현실 앞에서 2008 인권선언은 그저 선언만 하고 끝날 것인가? 선언을 하면 무엇이 달라지고, 이 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느냐를 질문을 2008 인권선언 운동을 하며 내내 받았다. 그럴 때마다 인권선언 운동이 뽀다구 나는 말잔치로 끝나지 않기 위해 과정에서 서로에게 힘을 주는 연대의 기운을 만들고, 우리의 활동양식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가령, 비정규직 인권선언을 담당하고 있는 ‘비정규직없는 세상만들기’는 선언자 행동수칙을 만들어 △선언자 조직하기 △비정규직의 문제를 알리는 주체 되기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비정규직법에 맞서 싸우기 등을 제안하고 있다. 11월 19일 2008 인권선언 포럼에서도 ‘불씨’들이 인권생활백서를 만들어 인권을 침해하는 삶의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실천을 만들어 제안하려고 한다.
2008 인권선언은 다양한 주체의 경험들이 인권선언과 인권운동으로 나올 수 있도록 촉매제 역할을 하고 싶다. 평등한 자들이 즐기는 투쟁과 축제에 당신을 초대하고 싶다. 불씨가 되어 인권을 실현시키는 삶의 구조와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놀이에 함께 하자.
* ‘얼어붙은 세상을 녹인다. 2008 인권선언운동’ 카페는 http://cafe.daum.net/2008humanrights입니다.
덧붙임
* 최은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