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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대답없는 메아리, "의문사 진상규명"

유가협 등, 대국민 캠페인 돌입


벌써 12년이 흘렀다.

독재권력 아래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람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숨진 '열사'의 유가족들이 모여 유가족협의회를 구성한 때가 1986년. 그때로부터 12년간 '의문사 진상규명과 열사 명예회복'을 촉구하는 유가족들의 투쟁은 지난하게 이어져 왔다.

그러나, 6공과 문민정부를 거쳐 새 정부가 출범한 지금까지도 '열사·희생자' 문제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가운데, 전국민족민주유가협(유가협)과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추모단체연대회의) 등 관련단체들은 또다시 '역사바로세우기'를 위한 투쟁의 대열로 나서고 있다.


5월말까지 매일 가두서명·사진전

유가협과 추모단체연대회의는 24일 서울역 광장에서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과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대국민캠페인' 선포식을 갖고 본격적인 투쟁의 시작을 알렸다. 이번 캠페인은 오는 5월말까지 매일(일요일 제외) 오후 2시부터 두 시간씩 진행될 예정이며, 가두서명운동과 함께 열사·희생자 사진전시회도 벌이게 된다. 또한 유가협 등은 오는 9월 정기국회 때까지 '의문사 진상규명 및 열사·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로 했다.

배은심 유가협 회장은 "수많은 양심적 죽음의 의혹을 풀어주는 것은 민주정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며 △의문사 진상규명 및 열사 명예회복 △독재 정권 아래 저질러진 정치적 사건에 대한 재심 △열사·희생자들에 대한 민주유공자 지정 △민주열사를 위한 국가기념일 제정 △열사 묘역의 일원화 및 민주화운동 기념관 건립 등을 거듭 촉구했다.


4공에서 문민까지, 의문사 42명

24일 오전 11시 30분부터 진행된 선포식에는 유가족 20여 명이 열사·희생자들의 영정을 들고 참석했으며, 연사들의 발언이 한 시간여 동안 이어졌다.

이창복 추모단체연대회의 상임의장은 "열사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은 살아남은 우리들의 몫"이라며 "조속히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오헌 민가협 공동의장은 "지난 3·13 사면조치에서 국민을 기만했던 현 정부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희생자들에게도 똑같은 태도로 일관한다면 우리는 이를 '국민의 정부'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으며, 김영대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온전한 역사를 세우기 위한 진실규명과 기록화 작업에 집권자가 앞장서지 않는다면 또다시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날 캠페인에는 최종길(73년 중앙정보부로 끌려간 뒤 의문사) 씨로부터 이덕인(95년 아암도에서 변사체 발견)씨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권 아래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42명의 사진이 전시돼, 서울역 광장을 지나는 많은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84년 군복무중 의문사한 허원근 씨의 아버지(허영춘)는 "너무나 억울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이른 것은 국민 모두가 감시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국민 모두가 권력의 감시자가 되고 의문사 진상규명에 적극 협조해 달라"고 호소했다. 허 씨는 또 "문민정부 아래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서 아들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것으로 판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사건을 전혀 재조사하지 않고 있다"며 "가족들만의 힘으로는 진상규명이 어렵고 시민들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78년 청주신학교 재학중 의문사한 정법영 씨의 아버지(정진동) 역시 "과거사의 규명은 제일 먼저 이뤄졌어야 할 일"이라며 "국민의 정부라면 역사 앞에 진실을 밝히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종철(87년 고문치사) 씨의 아버지 박정기 씨는 "더 이상 우리에게 피를 요구하지 말라"고 절규하며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하기도 했다.
현재 추모단체연대회의 등이 집계한 열사·희생자의 숫자는 4·19, 5·18 관련자를 제외하고도 3백28명에 이른다. 이제 또다시 거리로 나선 유가족들과 민주·사회단체들의 요구에 대해 '국민의 정부'를 표방하는 현 정부가 어떠한 대응을 보일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