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한국에서 노예로 있을테니 빚만 갚아주세요"
4월 30일 불법체류자에 대한 전면 사면이 끝난뒤, 현재는 '근무하고 있는 불법체류자를 신고할 경우 사면을 해 주겠다'는 반쪽 사면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출국을 원하면서도 벌금 때문에 출국을 하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출국 가로막는 벌금족쇄
두곳 회사에서 2백70만원의 월급을 받지 못한 아불 씨는 지난 2월부터 실직상태에서 월급을 기다려 왔다. 그는 4월 15일이면 틀림없이 월급을 주겠다는 회사측의 약속을 믿고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비행기 표를 구했다. 그리고 4월 24일 12시 비행기 좌석까지 예약했지만, 회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회사측은 이어 4월 28일엔 무슨일이 있어도 월급을 준다고 약속했고, 이에 아불 씨는 다시 5월 4일자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그러나 회사는 그 약속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월급을 받지 못하게 된 아불 씨는 분노로 마음을 채우면서도, 병환으로 위급한 어머니 생각에 결국 출국을 결심하게 되었다. 2백70만원의 월급 받을 것마저 포기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벌금 1백만원을 내야 갈 수 있다는 말은 다시한번 아불 씨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월급을 기다리다 출국을 못했지만, 결국 월급도 받지 못한채 벌금만 물게 생긴 아불은 "이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누구 책임이냐"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출국을 못하게 된 그는 "다 죽어가는 어머니라도 볼 수 있도록 회사가 벌금이라도 내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분노를 금치 못한다. 이제 아불은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할 판이다.
비행기 표라도 팔아야
밀린 월급 50만원을 받아 겨우 비행기표를 구입한 바둘 씨, 부도난 회사에서 밀린 월급도 못받고 한 민간단체로부터 비행기표값을 지원받은 조니 씨는 친구들과 지난 4월 30일 오후 6시 10분발 비행기를 예약했다. 그러나 당일 오후 2시30분경 공항에 도착한 이들은 항공사측으로부터 비행기 자리가 없다는 통보를 접했고, 하는 수없이 5월 15일자 비행기편을 다시 예약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사유서를 첨부하고 출입국 관리소에 들렸을때, 출입국관리소는 벌금 1백만원을 내라고 통보했다. 결국 사면기간 내에 공항까지 갔던 그들은 출국도 하지 못한채 벌금만 물어야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벌금조차 낼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 출입국관리소측의 통보는 다시 직업을 찾아 일하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였다. 조니 씨는 "이제 벌금은커녕 비행기표라도 팔아서 먹고살아야 할 지경"이라며 허탈해 했다.
임금 84만원에 벌금 80만원
지난 넉달 동안 실업상태로 있던 벨랄 호세인 씨는 4월 26일 밀린 월급 84만3천원을 받았지만, 비행기가 모두 예약되어 있던 관계로 출국을 못했다. 결국 5월 15일 오후 6시10분 비행기를 예약한 그가 출국을 위해 출입국관리소로 갔을 때 관리소측은 80만원의 벌금을 요구했다. 밀린 임금 84만원 받고 80만원의 벌금을 내면 결국 남는 돈은 4만원. 한참을 기다린 끝에 밀린월급을 겨우 받아낸 호세인 씨에게 벌금을 내라는 이야기는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다. 비행기표값 빌린 것, 실직 상태에서 생활비 빌린 돈까지 갚고 나면 남는 건 한푼도 없고, 공항에서 고향에 갈 차비도 부족하다. 호세인 씨는 "빈털털이 신세로 고향에 돌아가면 선물은 고사하고 '거지왔다'는 소리만 안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본전도 못건진 한국생활
모하마드 장기르 씨는 한국 돈으로 6백만원을 들여 96년 10월 19일 입국했다. 그러나, 그가 한국에서 번 돈은 고작 3백만원. 지금 당장 돌아가도 3백만원의 빚을 지게 된다. 지난 2월 15일부터 실직상태에 있던 그는 본전이라도 찾아 보려고 일자리를 기다렸지만 결국 포기하고 돌아갈 것을 결심했다. 한국의 IMF는 외국인노동자를 한국에서 내몰고 있었다.
그 역시 한 민간단체로부터 비행기표값을 도움받고 지난 4월 22일 출국하려 했으나 좌석을 구할 수 없어 4월 30일 사면 기간 내에 떠날 수가 없었다. 김포공항에서 상담도 해봤지만 4월30일 이전에 떠날 수 있는 뚜렷한 방안을 찾지 못했다. 하는 수없이 5월 20일자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출입국 관리소에서 출국 신청을 한 그는 1백만원의 벌금을 내라는 소리에 기겁하고 말았다. 모하마드 장기르 씨는 "차라리 한국에서 노예로 있을테니 빚좀 갚아 주세요"라며 흐느꼈다.
역효과 낳는 벌금제도
현재의 벌금제도는 두가지 측면에서 모순을 가지고 있다. 우선 현 벌금제도는 외국인노동자로 하여금 체불된 임금을 받지 못하고 떠나게 만들고 있다. 받아야할 월급보다 1달에 10만원 꼴인 벌금이 더 많기 때문에 결국 임금 받는 것을 포기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IMF 이후 자진출국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벌금은커녕 비행기 값도 없는 사람들에게 벌금을 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자진 출국을 포기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벌금정책의 주요목적이 불법체류자의 자진출국을 유도하는 데 있다면 자진출국과 벌금 제도간의 모순부터 제거해 나가야 할 것이다.
박천응(목사,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