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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보자 폴짝] 오늘 처음으로 꽃을 받았어요

미등록이주노동자, 나의 이야기

나는 오늘 처음으로 꽃을 받았습니다.
한국에 와서 처음 받은 꽃이라, 탐스럽게 핀 하얀 꽃이 더 예뻐 보입니다.
하긴 오늘은 무척 특별한 날입니다. 나의 장례식이 있는 날이거든요.
나는 2007년 2월 11일에 죽었습니다.

‘나’의 이야기

나는 5년 전,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왔습니다. 나처럼 다른 나라에서 일하러 온 사람을 ‘이주노동자’라고 하더군요. 이주노동자인 나는 한국에서 두 해 동안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년이 지나면 자기 나라로 꼭 돌아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불법체류자’가 되지요. 나도 원래 두 해 동안만 일하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려 했지요.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일자리를 찾기 힘든데다가 한국에 오려고 진 빚도 아직 다 갚지 못해 좀더 돈을 벌려고 그냥 한국에 남았답니다. 그래서 나는 ‘미등록이주노동자’가 되었습니다. ‘불법체류자’라고도 하는 미등록이주노동자는, 한국에 머물러도 된다고 한국정부에서 허락해주는 ‘비자’ 없이 한국에서 머물며 일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지금 한국에는 40여만 명의 이주노동자 중 20만 명 정도가 나와 같은 처지의 미등록이주노동자랍니다.

나는 미등록이주노동자라서 일자리를 찾기가 힘듭니다. 나를 고용했다가 적발되면 사장이 벌금을 물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나는 ‘그냥 노동자’들에 비해 낮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더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합니다. 얼마 전까지, 도시에서도 한참 들어가는 시골의 한 가구공장에서 12시간씩 밤 근무를 했습니다. 같이 밤 근무하던 동료가 손을 크게 다치는 것을 보고 일을 그만 두었습니다. 1년 넘게 일했지만 변변한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공장에서 나왔지요. 그 다음 나는 휘발유를 만드는 공장을 소개받았습니다. 저번 공장보다 시설은 나빴지만 낮에만 일해도 되어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 곳에서 일하기로 했지요. 사장은 회사 사정이 안 좋아 나중에 한꺼번에 월급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석 달 동안 월급을 받지 못하고 일하던 어느 날, 공장에 사람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처음엔 나를 잡으러 온 출입국(*) 단속반인 줄 알고 얼른 숨었습니다. 나는 미등록이주노동자이기 때문에 단속반에 걸리면 한국에서 ‘불법체류자’로서 쫓겨나거든요. 그래서 단속반을 피해 몸을 숨기는 일은 나에게 흔한 일이랍니다. 길을 다닐 때도 무조건 신분증을 꺼내보라며 ‘협박’하는 단속반을 만날까봐 고개를 푹 숙인 채 종종걸음으로 도망치듯 걷기도 하고요.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동료는 집에서 잠을 자다가 들이닥친 출입국 단속반 때문에 속옷 차림에 맨발로 창문에서 뛰어내려 줄행랑을 친 적도 있답니다. 언젠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한 이주노동자는 도망치려고 3층 창문에서 뛰어내렸다가 떨어져 죽은 일도 있었어요. 언제 어디서 단속반을 만날지 몰라 두근두근 긴장하고 산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랍니다.

그런데 그날 들이닥친 사람들은 단속반이 아니라 경찰이었어요. 알고 보니 내가 일하는 이곳이 가짜 휘발유를 만드는 불법 회사였던 거예요. 나도 모르게 불법 공장에서 일을 해온 겁니다. 나는 그대로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끌려갔습니다. 우리는 잡히면 무조건 본국으로 보내집니다. 아직 빚도 다 갚지 못했고, 석 달치 월급도 못 받았는데……. 그동안 한국에서 만난 친구들한테 아직 인사도 못했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나는 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보호소’라는 감옥같은 곳에 갇혀 있습니다. 좁은 곳에서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은 힘들었습니다. 방 안에 있는 화장실은, 밖에서도 안이 다 들여다보여 볼일을 보는 게 무척 민망했어요. 우리들 모습은 감시카메라로 24시간 내내 감시당했고 바깥소식은 전혀 접할 수 없었습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은 밀린 월급만이라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나를 윽박지르기도 했어요. 영어를, 한국말을 잘 못한다고 말이지요. 그렇게 지낸 지 며칠 째 되던 날 새벽, 불이 났습니다. 우리 발을 묶은 쇠창살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렇게 죽었습니다.


(*) 출입국 :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줄임말로, 사람들이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 드나듦에 대한 일을 맡아 하는 행정기관

이번 화재로 목숨을 잃은 이주노동자 아저씨들의 합동분향소 모습.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떡해야 할까요?

▲ 이번 화재로 목숨을 잃은 이주노동자 아저씨들의 합동분향소 모습.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떡해야 할까요?



지난 11일,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보호소에서 불이 났습니다. 그 화재로 27명의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습니다. ‘나’의 사연은 진짜로 그곳에 있다가 돌아가신 우즈베키스탄 아저씨의 이야기는 아니랍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많은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 흔히 겪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많은 미등록이주노동자 아줌마, 아저씨들이 ‘나’와 같은 처지랍니다. 전철 안에서 만났던 네팔 아줌마나 시장에서 만났던 버마 아저씨, 또 뒷집에 사는 베트남 아저씨랑 우리 학교 알리네 엄마는 단지 미등록상태인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불법 단속과 무조건 강제추방의 위협 속에 살고 있습니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산다는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생활하지 못하게 한답니다.

피부색이 다르고 겉모습이 다르게 생겨도, 말이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랍니다. 사람들이 차별할 때 마음 아파하고,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하고, 친구와 자신만의 비밀을 나누며 가슴 따뜻해지고……. 이번 화재사고로 아버지를, 남편을, 자식을 잃은 사람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요? 동무들은 한번 생각해본 적 있나요?

누구는, 이번 화재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언젠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고요. 더불어, ‘사람’과 ‘안전’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잘못된 제도와 정책을 계속 굳게 지켜나간 정부의 잘못이라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는데요. 이번 화재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게 하얀 국화를 건네는 이들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합니다. 하지만 슬픔에만 젖어있어서는 안되겠지요.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잘못된 제도와 정책을 제대로 바꿔나가도록 해야 하겠어요! 더 이상 사람들이 이렇게 말도 안되게 죽으면 안되겠죠.

화재로 돌아가신 이주노동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