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윤리·안전에 관한 합의회의' 예정
지난해 '복제양 돌리'의 탄생과 더불어 '생명공학의 유용성과 위험성'이라는 주제가 인간사회의 비상한 관심거리로 등장한 바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어디까지 추구되어야 하는 것인가?"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는 과학기술의 연구에 일반인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는 없을까?"와 같은 문제들이 세계적으로 심각하게 제기되었던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이같은 논의가 활성화되지 못했지만, 오는 10월로 예정된 '생명윤리·안전에 관한 합의회의(consensus conference)'를 계기로 서서히 사회적 논의의 장이 마련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15일 워크샵을 통해, '합의회의' 개최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임을 밝혔다.
'합의회의'란 80년대 후반 이후 유럽에서 새롭게 확산되고 있는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참여'의 한 방법으로, "무작위로 선별된 보통사람들이 논쟁적인 과학적 주제에 대해 전문가들에게 질의하고 전문가의 답을 청취한 뒤, 내부 의견을 통일해 최종적으로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들의 견해를 발표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이영희 교수(가톨릭대 사회학과)는 "과학기술이 우리의 일상적 삶 구석구석에 침투해 있지만, 과학기술 '전문가'를 제외한 '보통사람들'은 이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합의회의란 전문가의 독점성과 일방적 계몽에 의한 과학기술의 대중화를 거부하고 과학기술에 대한 전(前)단계의 토론과정에 일반시민이 참여하고 새로운 대안적 모델을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같은 '합의회의'는 덴마크와 네덜란드에서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덴마크의 경우 △농업과 산업에서의 유전공학의 적용(1987) △인간 유전자에 대한 과학지식의 이용(1989) △대기오염(1990) △동물에 대한 유전자 조작 실험(1992) △전자주민카드(1993) △유전자치료(1995) 등이 합의회의의 주요 주제로 논의된 바 있다.
이영희 교수는 "합의회의는 일방적 계몽의 성격을 띠는 공청회와 달리 시민들이 조직의 주체가 되어 전문가들을 초청해 질의를 벌이는 것"이라며 "과학기술의 문제에 대해 일반인들과 전문가, 정치인들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것이 합의회의의 중요한 목적"이라고 밝혔다. 반면, 이같은 '합의회의'의 긍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전문적 분야에 대해 얼마나 올바른 정책대안을 내놓을 수 있겠는가' '그러한 정책대안이 얼마나 강제력을 갖겠는가' 등의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게 된다.
이날 워크샵엔 올해 3월 일본에서 '유전자치료에 관한 합의회의'를 치렀던 와카마츄 유키오 교수(동경전기대학교)가 참석, 일본의 경험을 소개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유키오 교수는 "과학기술에 대한 일반 대중의 참여를 위한 일반인 포럼을 어떻게 조직할 것이며, 그러한 대중 참여 자체가 과연 가능한가"가 커다란 문제라면서도, "이러한 방법의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실험적인 합의회의를 개최하는 것은 의미있고 중요한 일"이라고 밝혔다.
한편, 황상익 교수(서울대 의대)는 "생명공학을 비롯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나름대로의 유용성을 가질 수도 있지만, 예측할 수 없는 위험과 윤리적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며 "안전성과 윤리적 측면에 대한 더 많은 논의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한 유전자 치료의 경우, 암 등의 난치성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유용성이 매력을 끌면서도 동시에, 인간과 환경에 유해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 유전정보의 오남용과 유전자 프라이버시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등은 위험요소로 꼽히는 것이다.
황 교수는 "인간 게놈에 대한 어떠한 연구나 응용도 특히 생물학, 유전학, 의학의 분야에서 개인이나 집단의 인권, 기본적 자유, 인간의 존엄성에 우선할 수 없다"는 '인간 게놈과 인권에 관한 보편선언'의 정신을 토대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 지금의 과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