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후원인 인터뷰의 주인공은 양선화 님입니다. 올해 첫 후원인 인터뷰답게 유독 처음 느끼고, 처음 경험해보는 일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담겼습니다. 처음 해보는 일이 많은 사람은 왠지 용감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양선화 님이 그런 사람인 듯합니다. 자신이 속한 조직으로 자기 소개하는 걸 좋아하는 선화님의 삶이 어디로 향하는지 잘 느껴지는 인터뷰였는데요, 그 지향에 인권운동사랑방이 함께여서 참 다행입니다.
◇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자기소개를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제가 속한 조직을 소개하는 건데요. 저는 우선 출판 노동자이고. 소속 조직은 땡땡책협동조합, 녹색당,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 이렇게 세 군데예요. 조직에 속해 있다는 건 피곤한 일이지만, 저는 조직을 좋아하고 소속되는 걸 좋아해요. 제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드러내기 때문에 소속된 곳이 저를 제일 잘 설명해준다 생각해요.
◇ 지금 일하는 곳은 어떤 곳인가요?
지금은 어린이, 청소년 대상 책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해요. 제가 이 출판사에서 일한 지 이제 일 년 반 정도 되었어요. 보통 편집자들이 일이 많은데, 지금 안착한 회사는 야근을 한 적이 입사 이래 통틀어 두 번? 정도밖에 없었어요. 물론 작년에 책 편집만 다섯 권을 했고, 외주관리, 기획, 잡무도 있지만, 제가 속한 다른 조직에서 열리는 행사에 야근 때문에 못 가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죠. 그런 의미에서 되게 좋은 회사예요. 여기를 다니면서 제가 하고 싶은 과외 활동이 가능해졌으니, 이 회사에 다녀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웃음) 참, 그리고 작년에 제가 편집자로 첫 기획을 했었어요. 현재 작업 중인데, 기획을 할 수 있고 통과, 계약까지 가는 환경이 처음이라 좋았어요.
◇ 녹색당원으로 본인을 소개해주셨는데, 당에서 하는 활동 중에 기억나는 거라도 있으신지?
사실은 제가 아무것도 안 맡고 있는 조직이 녹색당이에요. (웃음) 작년이 특별했던 이유가 지방 선거가 있었잖아요.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온 신지예 후보 선거 캠프로부터 지지 발언을 부탁받았어요. 발언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소위 셀럽이나 단체 활동가들로 구성되어 있어 ‘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죠. 그날 제 발언의 제목이 “어떤 남자가 서울시장이 된들 제 일상이 바뀌겠습니까?”였는데, 그 제목을 많이들 좋아하시더라고요.
마침 또 제가 사는 동네에 녹색당 후보가 나왔어요. 녹색당 지역 총회를 갔다가, 이상희 후보에게 반했어요. '30대 비혼 여성의 정치'가 이 후보가 내세우는 일종의 캐치프레이즈였어요. 거기에 꽂힌 거예요. 제 눈에 이상희 후보가 스마트하고 담백하고, 빛이 나는 거예요. (웃음) 그날 반해서 퇴근 후나 주말에 선거운동을 함께 하고 그랬어요. 제가 사는 동네에서 정치인 지지운동을 처음 해봤어요. 녹색당 옷을 입고 후보 명함 돌리는 일 같은 거죠. 제가 매일 출근하는 그 길 위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게 되게 감격적이었어요. 후보가 길거리 연설에서 지역사회에 존재하지만 비가시화된 사람들, 예컨대 철거지역 주민, 시장 상인, 청소 노동자, 비혼 여성, 페미니스트, 어린이 시민, 반려 동물 등의 존재를 호명하면서 이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말했어요. 녹색당에서 늘 듣는 말이고, SNS상에서 매일 만나는 이야기지만, 실제 제가 사는 공간에서 저런 이야기가 울려 퍼지니 너무 자랑스럽고,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후보 지지 발언을 했던 경험도 좋았어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제가 늘 출퇴근하는 길에서 왜 이 후보를 지지하는지 거의 접신한 듯 말했어요. 되게 좋더라고요. 녹색당 후보는 안타깝게 떨어졌지만, 제 기억에 그 좁은 동네에서 이천 표 넘게 얻었어요. 듣도 보도 못한 젊은 여자가, 그것도 녹색당이라는 알려지지 않은 당 후보가, 이천 표를 모은 거죠. 처음으로 동네 정치라는 것에 대한 감각이 생겼고, 이사 온 지 3년 만에 처음으로 이 동네가 내 동네라고 느낀 거죠. 다음에 또 이상희 후보가 출마한다면 휴가를 내서 선거운동을 같이 하고 싶어요. 깊이와 단단함이 남다른 여자들은 많지만 그들이 선거에는 잘 안 나와요. 그래서 이상희 후보가 소중하고, 이 사람이 구의원이 되면 이 동네에서 사는 게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봅니다. 또 죽기 전에 녹색당이 집권당이 되는 것도 상상하죠. 제1당 말이에요. 판타스틱하죠. 백세 시대라고 가정한다면 죽기 전에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웃음)
◇ 선화님은 때로는 되게 거침없는 사람 같은데, 편집자로 일하면서 곤란한 적은 없나요?
책에 대해 느끼는 대로 막 말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책 내용이 너무 아닌 거 같은데, 주변에서 다들 봐야 한다고 난리가 날 때. 별로라고 생각하면서도 말을 아끼잖아요. 왜냐면 어디 가서 다 마주칠 사람들이니까 비판하는 게 자유롭지 않죠. 저는 이런 게 ‘벌거벗은 임금님’ 느낌이에요. 책을 내면 책을 낸 것만으로 회자가 되고 좋은 평가를 받는 작가들이 있잖아요. 저는 편집자이지만 이런 때는 독자로서 말을 하고 싶거든요. 독자일 때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게 있고, 편집자일 때 할 수 없는 말이란 게 있거든요. 편집자는 언젠가는 그 저자를 만나 일을 할 수도 있는데, 편집자 위치에만 있으면 절대 저자들 욕을 못해요. 저라고 다르겠어요? 저자를 비판했는데, 실제로 만나면 얼마나 부끄럽겠어요. 그래서 아예 그런 자리에는 제가 안 있겠죠. (웃음) 피해 다니겠다는 이야기죠. 싫으니까. 그게 가능하다는 면에서 별로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잃을 게 생기면, 제가 더 유명해지면 좋지만 (웃음) 비판을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잃을 게 많아서 할 말을 못 하는 거잖아요. 저는 그런 게 없어서 말할 수 있어요.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죠. 즐기는 거죠.
◇ 편집자이지만, 글은 안 쓰시나요?
제가 작년에 강좌 하나를 들었는데, 제목이 “자기만의 방과 페미니스트 프리즘”이에요. 이 수업에서 (제가 참여하는 독서모임에서 쓴) 내 몸에 대한 글을 발표했었어요. 아무에게도 말 안 했던 몸의 역사를 썼어요. 그걸 쓰고 그 수업에서 모르는 사람과 나누고 발표했어요. 자기를 구성한 모먼트를 쓰고 발표하는 생애 첫 경험이었죠. 저는 어릴 때부터 글을 많이 썼지만, 그거랑 다른 느낌이었어요. 제 글쓰기는 오랫동안 소설에 국한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여성으로서 자기 서사와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글쓰기를 더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 좋아하는 소설 캐릭터가 있을까요?
예전에 좋아했던 건 알베르 까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였어요. 뫼르소라는 인물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게 까뮈가 쓴 철학책 <시지프의 신화>에 등장하는 시지프라는 부조리의 인간형이거든요. 쉽게 말하면 무의미한 노동과 삶을 반복하는 굴레에 있지만 자살하지 않는 인간형이죠. 까뮈가 지향하는 인간상은 세계의 부조리에 눈감지 않고 끝까지 싸워 살아남는 거예요. 그걸 소설로 구현한 게 이방인이고요. 뫼르소가 사형당하기 직전 묘사가 압권인데, 제가 그 인물에게 완전히 감정 이입을 했었어요.
예컨대 서정주의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되는 <자화상>이라는 시 있잖아요.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그 시의 정서거든요. 시인 윤동주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부끄러워하는데, 서정주의 시적 자아는 전혀 부끄러움이 없어요. 그 시구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처럼 부끄러움 없이 끝까지 오래 가는 거죠. 이게 까뮈가 말하는 부조리의 인간, 사형당하기 전까지 살아남는 데 부끄러움이 없는 뫼르소와도 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제가 소설을 쓰거나 읽을 때 그 인간형에 오랫동안 이입했어요.
요새 와서 그게 깨졌어요. 사실 까뮈는 프랑스 엘리트 남성이에요. 시지프도 남성으로 상상되는 신화적인 인물이죠. 여성으로 상상되지 않죠. 무거운 바위를 짊어지고 무의미한 굴레에서 출퇴근을 반복하는 병든 수캐에 더 이상 이입을 못해요. 오히려 예전에 싫어했던 여성 캐릭터에 이입을 하죠. 제가 대입하는 인간이 달라졌어요. 가장 최근에는 드라마 <마더>(한국판)의 차영신이라는 인물(이혜영 분)이 너무 좋고 놀랍고 오래 기억하고 싶었어요.
◇ 그러한 변화는 이른바 페미니스트 리부트라 불리는 국면의 영향인가요?
완전히 그렇죠. 제가 둘러싸인 환경이 좋았어요. 주변에 워낙 페미니스트들이 많고 그 덕분에 좋은 텍스트를 접하고, 그걸 잘 흡수했어요. 소설 취향이라고 해야 하나? 인물 취향이 다 바뀌었어요. 저는 중년 남성에게 엄청 이입하는 사람이었어요. 제가 스무 살에 쓴 소설이 있었는데 제목이 “막차, 마흔다섯”이었어요. 비루한 인생을 사는, 세월의 무게를 짊어진 남자들의 이야기인데, 그런 류의 이야기에 굉장히 오랫동안 꽂혀 있었어요. 생각해보세요. 스무 살 여자가 그런 데 꽂혀 있었어요. 제가 늘 <시지프 신화>를 인생의 책으로 꼽았는데 그것과 이제 결별한 느낌이에요. <시지프 신화>를 읽으며 아빠를 생각했었어요. ‘우리 아빠가 무의미한 노동을 평생 하면서 우리를 먹여 살렸구나’, 처음으로 아빠의 노동을 생각했죠. 하지만 엄마의 노동은 생각 안 했어요. 제가 완전히 이입한 사람은 중장년 남성인 거죠.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데, 제가 실제로 짝사랑한 사람들도 고학번 남자 선배나 교수 같은 사람들이었죠. (웃음)
제가 소설을 많이 읽었다고는 하나 좁은 세계의 소설을 읽어온 거 같아요. 지난 10년 동안 좋아해 오던 작가들을 지금은 좋아한다고 할 수가 없어요. 그 책들 다 버렸어요. 지금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 않아요. 대신 버린 작가는 말할 수 있어요. 버리려고 버린 게 아니라 버리게 돼요. 최근 1, 2년이 이별하는 시간이었어요. 제가 앞서 말했던 “자기만의 방과 페미니스트 프리즘”이라는 수업을 들을 때 강사 오혜진 님이 한 말 중 꽂힌 단어가 자존심이라는 단어였어요. 페미니즘 작품으로 검증받은 걸 따라 읽는 게 아니라, 뭘 읽을 때 페미니스트의 눈으로 읽어야 한다는 거죠. 어떠한 조건을 갖춰야 여성 서사가 되는 게 아니라 내가 텍스트를 읽어내는, 소비하는 사람이라면 전문 비평이 아니라도 자기 잣대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자기 눈으로 바라보고 읽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 요즘 읽고 계신 소설은 무엇인가요?
요샌 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데... 최진영의 <비상문>이라는 소설을 그나마 최근에 읽었어요. 자살한 동생을 둔 형이 화자인 소설인데. ‘내 동생 최신우는 3년 전에 열여덟 살이었고 지금도 열여덟 살이다.’라는 구절로 시작해요. 그만큼 형은 동생의 자살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인 거죠. 아무리 사랑해도 동생의 세계를 절대 이해할 수 없어요. 삶이 너무 힘들어서 비상문으로 탈출했겠지 정도로밖에는. 동생이 왜 자살을 했는지 어떻게든 이유를 알고 싶어 동생의 문제집 귀퉁이에 혹시라도 남겨져 있을 메모를 찾아보기도 하죠. 하지만 끝까지 동생이 죽어야 할 이유를 모르죠. 앞서 말한 <시지프 신화>랑 대비되어 인상적이었어요. <시지프 신화>의 중요한 화두가 자살인데, 까뮈는 유일하게 철학적 가치가 있는 질문이란 ‘인생이 자살하지 않고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라고 했어요. 그 책에서 자살은 도망치는 것과 같아요. 부조리, 괴물 같은 사회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것, 무슨 죄를 저지르든 남자다운 남자는 끝까지 오래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로도 읽혀요. 반면에 현실 속 제 주변에는 죄도 안 지었는데 자살 충동을 느끼는 여자들이 많아요. 자살 충동을 다스릴 수 없는데 살아야 하니까 스스로 응급실에 가기도 해요. 날마다 우울증 약을 챙겨 먹는 여자들은 더 많고요. 지금은 자살을 단순하게 상상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거죠. 차라리 <비상문>의 화자처럼 ‘모르겠다’고 말하는 게 맞아 보여요. 자살이 도망치는 거라고 말하는 건 근대 프랑스 철학자 남성에게나 어울리는 게 아닌지.
◇ 인권운동사랑방을 비롯해 후원을 많이 하고 계시는 거 같은데,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뭔가요?
제가 조직에 소속되어 있는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곗돈 붓는 느낌이죠. 조직이라는 게 사실 제가 속한 사회라고 생각해요. 내가 후원을 하는 게 결국 나한테 돌아온다고 생각해요. 제가 잘못될 때 그 사회가 저를 그냥 내버려두고 있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후원을 늘리려고 노력해요.
◇ 마지막으로 인권운동사랑방에 하고 싶은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오랫동안 알고 있었어요.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필요한 조직이라는 사실은 틀림없죠. 그런데 그런 조직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렇다고 다 후원을 하지는 않아요. (웃음) 단체와 연을 맺는 계기는 사람인 거 같아요. 인권운동사랑방이 제가 연을 맺고 있는 활동가들에게 좋은 공간이라면 저는 계속 후원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