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조측 대안·협상요청 무시
노동자들은 목숨을 제외한 모든 것을 양보하고 나섰지만, 자본은 그 목숨까지 요구하며 노동자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최근 1천6백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 통보를 내린 현대자동차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문정현 신부, 한명희 여성단체연합 대표, 박원순 변호사, 박석운 노동정책연구소장 등 각계 인사들로 구성된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진상조사단’은 6일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7월 31일부터 6일간 울산 현지에서 진상을 파악한 결과 “노동자들은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으며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호소하고 있지만, 회사측은 대화와 협상을 거부하며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외면하고 있다”고 밝혔다.
목숨 빼고 다 내놨다
실제로 이번 정리해고 사태를 막기 위해 노조측은 뼈를 깎는 아픔을 감수하며, ‘일자리만 남기고 모든 것을 양보’하고 나선 상황이다. 노조측은 이미 지난달 16일 2천5백억원에 달하는 임금삭감과 6개월간의 순환휴가 및 주 35시간으로의 노동시간 단축 등의 고통분담 안을 제시한 바 있다. 심지어 노조측은 휴가기간의 임금 중 30%를 노조기금으로 부담하겠다는 파격적 제안까지 내놓았으며, 추가로 △평화선언(무쟁의선언) 및 고용안정 협정 체결 △추가 임금삭감 △희망퇴직한 노동자를 위한 고용안정센터 개설 △귀농 및 창업 지원 △리콜지원 △노사화합한마당 개최 등의 제안 등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노동자들의 대안 제시에도 불구하고 회사측은 “협상시한이 너무 늦었다”는 구실로 노조와의 협상을 일체 거부하고 있다.
긴박한 해고 사유 없어
또한 진상조사단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현대자동차에는 정리해고를 감행해야 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단은 “최근 현대그룹이 울산방송국, 울산 주리원백화점 인수에 이어 기아자동차 인수 문제에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정리해고를 감행해야 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더불어 “현대자동차의 경우 97년 영업분야에서 8천1백24억원의 흑자를 내고도 비영업분야에서 7천6백58억원의 적자를 냈다”며 “경영구조 개선을 위해 불가피한 것은 정리해고가 아니라 방만하고 불건전한 경영방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목표는 ‘노조 활동가 제거’
결국 이번 현대자동차의 정리해고는 경영상의 필요보다도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제거하려는 데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우선 회사측은 정리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은데다, 노조에서 제시한 근로시간 단축과 순환휴가 등의 제안을 성실히 검토하지 않았으며 그 대상자 역시 자의적으로 선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회사측은 위원장, 부위원장 등 노조상근간부 26명을 모두 해고대상으로 선정했으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는 노동부 경고에 따라 11명의 간부를 대상에서 제외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리해고 대상에는 115명의 현직 노조간부들과 전직노조위원장 2명 등 핵심적인 노조 활동가 대부분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박석운 소장은 “IMF시대 경영악화를 빙자해 노조의 핵심간부를 제거할 의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진상조사단은 정리해고와 관련된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서도 “노조가 노동위원회의 조정을 신청하고 그로부터 10일이 경과된 이후에 파업에 돌입하였으므로 절차상 하자는 없다”며 “일부 노동자들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을 빌미로 파업자체를 불법으로 호도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지역여론, 정리해고 철회 촉구
한편, 울산 공장 내에선 약 5천여명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도로주변에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중이며, 7월 20일부터 이헌구, 정갑득, 윤성근 씨등 전직 노조위원장 3명이 1백미터 높이의 굴뚝 위에서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조사단은 “정리해고 통보로 임산부가 유산한 경우가 4명이나 되며, 농성중인 가족 가운데 임산부들이 많아 공권력이 투입될 경우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지역여론 역시 현대자동차의 정리해고에 반대하고 있으며, 특히 공권력의 투입이 아닌 평화적 해결을 바라고 있다고 조사단은 전했다. 또 울산시 중구청장 등 단체장과 광역의원, 기초의원들도 회사측에 정리해고의 철회를 요구하며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진상조사단은 “현대그룹에서 즉각적으로 대화를 재개해 노조와의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유일한 처방”이라고 결론을 내리며, “언론이 사태진행에 침묵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