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노숙자들을 시설에 분류․수용키로 결정함에 따라 21일부터 서울역 등지에서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한 상담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노숙자 가운데 일부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잠자리나 먹을 것보다도 일자리”라며 수용방침에 대한 반발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합숙소 수용과 관련, 노숙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자유의 제한 등 합숙소 내의 억압적 분위기와 처우 문제다. 더불어 합숙소에 입소한 뒤에도 일부가 다시 부랑인시설로 수용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서울역광장의 노숙자 조 씨는 우선, 이번 서울시의 조치가 반강제적으로 진행되는 데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합숙소 입소를 신청하지 않고 노숙을 하게 되면 곧바로 부랑인시설로 끌려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합숙소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21일부터 경찰이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노숙자들을 단속해 잡아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합숙소 생활에 불만을 표시하거나 반발하는 사람들도 부랑인 수용시설에 데려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한 조 씨는 “부랑인시설에 수용될지 모른다는 압력 때문에 노숙자들이 억지로 노역에 종사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합숙소에 일단 입소하더라도 일하러 나가지 않는 사람은 다시 부랑인시설로 보낸다고 들었다”며 “앞으로 추운 겨울에 일당 1만5천원 밖에 안되는 공공근로사업에 억지로 나가야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현재 공공근로사업의 일당은 2만7천원 안팎이나 내년 1월부터 노임이 1만5천원 정도까지 낮아질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용이 능사 아니다”
이처럼 서울시의 동절기 노숙자 대책은 ‘수용과 관리’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노숙자 입장에선 ‘일자리 보장과 자활’이 더욱 절실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노숙자 차 씨는 “추운 겨울에 일당 1만5천원을 받고 길거리에서 일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노숙자들의 숙소를 마련한다면서 한편에서 공공근로사업의 임금을 줄이는 것은 완전히 거꾸로 가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공공근로사업을 나가더라도 최소한 여인숙에서 잠자고 밥 사먹을 정도의 노임을 주어야 자활이 가능하다”며 “노숙자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통해 스스로 침식을 해결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노숙자는 “겨울을 맞아 노숙자들이 마지막 발악을 하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나온 것이 결국 노숙자 수용방침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업대책사업 실속 없다”
한편, 실업극복운동의 하나로 진행되고 있는 일부 종교․민간단체들의 실업 및 노숙대책사업과 관련해, 노숙자들은 “실속이 전혀 없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한 민간단체가 서울역에서 진행중인 신원카드 발급 및 상담활동에 대해, 노숙자 김 씨는 “취업알선 및 각종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서 카드도 만들고 여러차례 상담도 해봤지만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며 “그 단체는 단지 상담일지에 기록을 남길 목적으로 상담을 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다른 노숙자들도 “실제로 상담을 통해 취업한 사람은 1백명 중 한 명도 안된다”며 “대부분 저학력 일용직이었던 노숙자들이 일할 자리는 없고, 단체에서 소개해 준 공장에 찾아가봐도 허탕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실제 22일 서울역 광장에 게시된 취업정보판에는 모집이 이미 끝난 회사의 구인정보가 소개되어 있거나 심지어 모집계획이 없는 회사의 구인정보가 실려 있기도 했다.
일부 노숙자들은 “종교단체나 민간단체가 장사를 하려는 건지 노숙자를 위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피부로 와 닿는 도움이 전혀 없다”며 “정부보조금이나 타내려고 실직사업을 하는 게 아니냐”고 따져묻기도 했다. 그 가운데엔 “차라리 정부나 자치단체에서 실업기금을 직접 운영하는 게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못 배워서…” 푸념
이처럼 상황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지만 노숙자들 스스로 뚜렷한 대책을 요구하며 나서지는 못하고 있다. 한 노숙자는 “못 배워서 아는 게 없고 힘도 없으니까 시키는대로 그냥 따라 갈 수밖에 없다”며 “좀 더 여유있는 사람들이 단체를 만들어 노숙자들을 위한 대책을 요구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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