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역 화장실에서 노숙인 2명이 잇따라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노숙인권사회단체들이 연대모임을 구성하고 근본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실태조사에 돌입했다.
2일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아래 노실사), 빈곤사회연대, 민주노동당 등 노숙인권사회단체들로 구성된 '노숙인 사망 실태조사 및 근본대책 마련을 위한 연대모임'(아래 연대모임)은 서울역 대합실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존엄성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대해 성토했다.
기자회견에서는 민주노동당 서울시의원 심재옥 의원과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 한국빈곤문제연구소 류정순 소장 등이 발언했고 제보자인 학원 강사 최아무개 씨가 자신이 목격한 사건정황을 진술했다.
빈곤사회연대 유의선 사무국장은 "1월 22일의 서울역 충돌사태는 아직 망자의 호흡이 있는 상태에서 응급조치 없이 손수레로 짐짝처럼 옮겨 촉발된 사태"라며 "만약에 가족이 위급한 상황이라면 당연히 업고서 뛰어야 할 상황에서 쓰레기처럼 실려가는 같은 노숙인을 바라보면서 분노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노숙인 인권단체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사, 경찰 지휘부 간에 사체 검안 절차를 협의하던 중 경찰 측이 기습적으로 사체를 옮겨 버리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불거졌다는 것.
처음 노숙자의 상태를 목격하고 관련단체에 제보한 최 아무개 씨는 "서울역 직원들이 사망한 노숙인을 짐짝처럼 취급하며 주위의 시민들에게 '예 곧 치워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사람이 죽은 일은 신중히 다룰 문제'라고 생각했다"며 제보 경위를 설명했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인권의 첫 번째 원칙은 누구에게나 인권이 있다는 것"이라며 "국가의 존립근거가 바로 이 인권이고 이것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인데 이번 사건에서 국가는 이에 소흘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죽어서도 인격적 대우를 받을 수 없는 노숙인들이 분노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빈곤문제연구소 류정순 소장은 "추운 겨울날 조금이라도 따뜻한 서울역으로 들어오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의 강제수용계획 발표에 대해 "노숙자들이 왜 그런 상황에 처했는가에 대한 근본적 성찰 없는 근시안적 대응"이라고 비판하며 "화장실에서 죽어가는 노숙인들이 시민들을 위해 치워지고 격리되어야 하는 쓰레기 취급을 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정부의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라 성토했다.
한편 이번 사건을 대하는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해서도 지적됐다. 민주노동당 심재옥 서울시의원은 "언론이 지금 우리를 이 자리에 내몬 것"이라며 "언론 보도가 노숙인 문제에 대한 구조적 성찰 없이 시민들에게 불편을 준다는 부분만을 확대하는 부당한 태도를 보였다"며 분개했다. 그는 "경제 규모 세계 12위인 국가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짐수레에 싣고 가는 일이 벌어진 이유, 노숙인들이 그렇게 항거할 수 밖에 없었던 사건의 본질을 언론이 정확하게 보도했어야 했다"고 언론의 보도태도를 질타했다.
한편 연대모임은 설날 이후 한 달 동안 △경찰, 공안, 철도청을 대상으로 노숙인 사망 관련 정황을 조사하고 △공공역사 중심의 노숙자 지원체계의 문제점을 점검하며 △노숙인 주거 문제와 쉼터의 기능 등에 대해 다각도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실태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이를 통해 연대모임은 △공공역사 중심의 현장의료체계 △일상적인 인권침해 △비현실적인 의료구호비 △주거대책 문제 등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토론회와 공청회, 대중 집회 등을 통해 공론화시킬 계획이다.
심 의원은 "노숙인 뿐만 아니라 쪽방, PC방, 고시원, 찜질방 등에 거주하는 준노숙인들에 대한 조사도 병행해서 실시할 것이며 노숙인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한번의 대응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울역 충돌 사건 당시 연행된 노숙인 6명 가운데 1명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은 현장 채증사진을 토대로 관련 노숙인들을 연행해 구속수사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현장에 있던 노숙인들은 대부분 피신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