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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밀실서 탄생한 ‘허수아비’ 인권위

법무부 인권법 시안 발표 독립성·실효성 없는 인권위 구상


정부가 구상해온 국가인권기구의 모습이 드러났다.

25일 오전 박상천 법무부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특수법인 형태의 국민인권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하는 인권법 시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법무부가 내놓은 시안에 따르면, 인권위원회가 독립성과 실효성 없는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할 것이 자명해짐에 따라 민간단체들은 즉각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이날 법무부가 공개한 인권위원회의 형태는 ‘독립적 특수법인’이다. 법무부는 △호주, 뉴질랜드, 영국 등의 인권위원회가 모두 법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국가기구보다 법인이 방대한 조직과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 등을 이유로 법인 형태의 타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특수법인 형태 인권위,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 위험

그러나 민간단체 측은 “특수법인은 정부 부처의 감독을 받아야 하는 만큼, 결국 인권위가 법무부의 산하 기관화 될 것”이라며 법무부의 안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게다가 법무부의 시안은 인권위원(9명)의 선출권을 갖는 이사회에 차관 4명이 당연직 이사로 참여하고 나머지 7명의 이사도 법무부장관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인권위원회를 정부가 장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았다.

이 같은 시안의 내용에 대해 법무부는 “외국의 모범적 입법례를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 또한 외국과 국내의 인권풍토를 무시한 것으로 비난받고 있다. ‘인권법 제정 및 국가인권기구 설치 민간단체 공동추진위원회’의 곽노현 공동집행위원장은 “호주나 뉴질랜드 등은 이미 1백년 이상의 민주주의 전통과 50년 이상의 인권보장 전통을 갖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인권탄압의 과거조차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며 “외국의 입법례를 그대로 들어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법무부의 시안에 따르면, 인권위원회는 그 관할과 권한에 있어서도 약체를 면치 못할 전망이다. 시안은 인권위원회의 관할 사항을 수사공무원의 가혹행위 등 7개 사항으로 국한했으며, 그 권한도 ‘권고 또는 의견표명’으로 낮추고 있다.

이에 대해 민간단체 측은 “특수법인의 위상으로는 정보․수사․교정기관 등의 인권침해 행위를 제대로 시정할 수도 없을 뿐더러, 정치적․정책적 이해가 걸린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권고를 해봤자 각 기관이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꼬집었다.


인권법 제정, 민주적․공개적 과정 거쳐야

이날 박 장관의 기자회견을 통해 시안이 공개된 뒤 민간단체 공추위는 오후 1시 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법무부 안은 말 그대로 시안일 뿐”이라며 “지금이라도 각 인권 및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정부와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할 것”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에서 곽노현 집행위원장은 “인권법의 제정은 헌법개정과 같은 민주적․공개적 과정을 거쳐야 할 뿐 아니라, 양심수 석방이나 의문사 규명 약속 등 인권의 새 시대를 체감할 수 있는 국민적 캠페인과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법무부는 오는 10월 정기국회에 법안 상정 이후, 12월 10일 인권법을 공포하고 내년 상반기에 국민인권위원회를 발족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