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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인권선언과 장애인의 최저 삶


정부는 최근 제2 건국운동의 일환으로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에 발표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장애인 인권(권리)선언 제정 작업을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이번에 제정되는 장애인 인권선언으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자 권리의 주체로서 장애인의 완전한 참여와 평등을 통한 사회통합을 재확인하고 이를 내외에 선언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가 나서 장애인 인권선언을 제정하기로 했다는 것은 장애인 입장에서는 고무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인권선언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이 땅의 장애인들에게 진정 희망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지려면 선결되어야 할 과제들이 있다. 즉 정부가 나서 장애인이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삶의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뒷받침과 경제적인 지원대책을 먼저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동정보다는 권리를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우리 나라의 장애인들은 긴 세월동안,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동등한 인격체라기보다는 도와주어야 할 동정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국민들은 장애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도와주어야 할 대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장애인이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한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그로 인한 차별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은 교육받을 권리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고 직업을 가질 권리에서도 심한 차별을 당하고 있다. 특히 삶의 수단인 직업을 가질 권리에서의 차별은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으로 묶어두는 데 결정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 차별로 인해 장애인이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곧 장애인이 경제적 무능력자로 전락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래서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을 장애인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더욱이 밑바닥 장애인 중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증장애인들은 최소한의 삶도 보장받지 못한 채 사회와 격리된 수용시설로 보내지고 있고 그도 아니면 거리에서 구걸로 연명하는 등 지금 이 순간도 힘겨운 나날들을 이어가고 있어 장애인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그 동안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장애인 차별 해소 대책은 미흡했지만 정부는 대기업에 2% 장애인 고용을 강제하는 장애인고용촉진법을 제정해 현재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시행 8년째인 올해 고용율 0.42%에서 보듯 기업의 비협조로 장애인 고용 정책은 여전히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고용촉진법 자체가 산업인력을 양성한다는 전제하에 노동부가 주무부서가 돼서 경증장애인 고용을 목표로 시행하고 있는 법이기 때문에 일을 통한 복지가 누구보다 절실한 중증장애인들은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한 채 고용촉진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말이 나온 김에 부연하자면 직업정책 뿐만 아니라 복지정책을 통털어 우리나라의 중증장애인을 위한 정부의 정책은 중증장애인 중 장애 등급 1급, 그것도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된 장애인에 한해 한 달 4만5천원을 생계보조비로 지급하고 있는 것이 전부다. 사실상 현재 정부의 중증장애인을 위한 복지정책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장애인 정책은 흔히 가까운 나라 일본의 장애인 정책과 비교되고 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중증장애로 인해 직업을 가지지 못한 장애인들에게 정부가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주는, 장애인이 사회에서 자립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장애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우라 나라와 달리 거리에서 구걸하는 장애인을 찾아볼 수 없다. 일본도 장애인을 도와주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우리 나라와 마찬가지지만 연금 지급을 통한 최소한의 삶의 보장으로 장애인이 극단적인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은 막아주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장애인 정책을 높이 살 수 있다.

물론 일본 장애인들도 불만은 있어서 필자가 만난 일본의 한 장애인은 일본정부가 연금을 지급하는 것을 빌미로 노동시장에서 장애인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일본의 장애인 복지정책을 비판했지만 우리 나라 장애인 현실에서 보면 이런 일본 장애인들의 고민은 말 그대로 행복한 고민일 뿐이다.


최저생활의 보장부터

지금처럼 경제 위기의 한복판에 있는 우리 나라 실정에서 일본처럼 장애인 연금으로 중증장애인들의 최저 생활을 보장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로 비쳐질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장애인 인권선언 제정이 가시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분명히 전제되어야 할 것은 장애인이 지금처럼 동정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고 최저 생활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한 정부의 장애인 인권선언은 선언적 의미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장애인 인권 선언 제정을 계기로 우선 중증장애인들의 최저 생활을 보장해 주는 복지정책 시행을 가시화해야 할 것이다.


이태곤(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부설 월간『함께걸음』편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