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 1월 15일 영장도 없이 중앙정보부로 끌려간 뒤 벌써 21년, 조상록(54․무기징역․안동교도소) 씨는 ‘간첩’이라는 낙인 아래 기나긴 감옥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77년 일본 유학(명치대학 대학원 정치학)길에 나섰던 조 씨는 방학을 이용해 잠시 귀국했다가 중앙정보부로 연행됐다. 검찰은 조 씨에 대해 일본에 사는 친형 조상호 씨로부터 공작금 22만원을 받고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했다는 혐의(간첩죄)를 적용해 기소했지만, 정작 조상록 씨는 고문에 의해 자백을 강요당했을 뿐이라며 간첩혐의 일체를 부인해왔다. 조 씨의 간첩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제출된 것이 단지 여권과 이력서, 사진 뿐이었다는 사실은 ‘사건조작’에 대한 의혹을 더욱 부채질했다.
이런 조 씨에게도 석방의 기회는 찾아왔다. 지난해 8월 준법서약서 제출을 조건으로 석방이 가능했던 것이다. 70․80년대의 숱한 조작간첩사건 연루자들은 이때 대부분 석방됐다. 그러나 20년을 복역한 조 씨는 석방대상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준법서약서 제출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조 씨가 사상전향과 준법서약 제출을 거부해 온 이유는 간단했다. “사건이 조작되었는데 내가 왜 전향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최근 3․1절 사면설과 함께 비전향장기수에 대한 석방이 다시 추진되고 있어 그 가족들은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조상록 씨의 석방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정부는 ‘북한에 가족을 둔’ 비전향장기수에 한해 준법서약 없이 석방할 것을 고려하고 있는데, 조 씨는 ‘남한에 가족을 둔’ 비전향장기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도 준법서약서가 석방의 조건으로 요구될 것이 예상되며, 그 경우 조 씨가 준법서약서 작성을 거부한다면 또다시 기약없는 감옥생활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전향장기수 현재 24명
한편 현재까지 흘러나온 이야기에 따르면, ‘북한에 가족을 둔’ 비전향장기수 가운데 일부에게도 준법서약이 석방조건으로 제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용각 씨등 초장기수 17명 외에 현재 전주교도소에 수감중인 신광수(71세․15년 구금), 손성모(71세․19년 구금) 씨 역시 ‘북한에 가족을 둔’ 비전향장기수에 해당되지만, 이들은 초장기수들과 별도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광수 씨와 손성모 씨는 모두 한국전쟁시 월북했으며, 80년대초 남한에 입국했다가 간첩 혐의로 구속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현재 무기징역(신 씨는 88년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형을 살고 있다.
이와 관련, 3일 ‘전북 평화와인권연대’(대표 문규현, 김승환)는 “신광수, 손성모 씨가 인구에 회자되는 ‘17명’에 포함되지 않는 것”에 우려를 표하며 “정부는 모든 양심수를 조건 없이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평화와인권연대를 비롯한 전북지역 인권단체들은 손성모, 신광수 씨에 대한 석방운동을 각계에 요청하고 나섰다.
그밖에 최연소 장기수로 알려져 있는 강용주(38세․구미유학생사건․15년째 구금) 씨와 92년 남한조선노동당사건(또는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민애전 사건)으로 구속된 최호경, 장창호, 조덕원 씨도 비전향장기수에 포함되지만, 석방여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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