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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김대중 1년, 그늘진 인권현장의 사람들 ④ 의문사한 재소자들


지난해 2월 18일 성동구치소에서 강제노역 중 의문사한 박순종 씨의 가족들은 얼마 전 고인의 1주기 추도예배를 드렸다. 하지만 박 씨의 시신은 사망 1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강남시립병원 냉동실에 꽁꽁 얼어붙은 채 안치되어 있다. 유족들은 진상규명을 바라는 실낱같은 희망 때문에 시신에 손을 못 대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정부’는 스스로 감옥의 인권을 많이 개선했다고 자찬하고 있지만, 이같은 의문의 죽음은 감옥의 인권현실이 여전히 열악하다는 사실을 반증해준다. 지난해 8월 발생한 남성진 씨와 신창제 씨 사망사건(안양교도소), 10월 손강철 씨(원주교도소)의 죽음, 11월 숨진 배재문 씨(전주교도소) 사건 등은 모두 의문투성이의 죽음이었다. 박 씨의 경우도 그 가운데 하나.


의문의 죽음이 계속되고 있다

검찰은 박순종 씨의 죽음을 단순 사고로 처리하며 사건을 종결지었다. 그러나 도처에서 제기되는 의혹들 때문에 유족들은 검찰의 결론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첫 번째 의혹은 구치소 측에서 사망 사실을 유족들에게 알리지 않았던 점. 박 씨의 아내 노성애 씨는 남편이 사망한 이틀 후 구치소 측에 안부전화를 했다. 구치소 측은 박 씨와 통화할 수 없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세번 째 전화에서야 비로소 박 씨의 죽음을 알렸다. 이미 시신이 병원으로 옮겨진 이후의 일이다. “구치소 측은 거짓말만 하고 있어요. 심지어 검찰에 제출한 사망 경위서에 저한테 전화를 했었다고 써있는데 이름도, 전화번호도 다 틀려요. 그리곤 남편을 행려자로 분류해서 서둘러 처리해 버린 거예요. 남편에게 두 차례 면회도 갔었고, 전화번호와 주소도 남겼기 때문에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는 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말이예요.”


꼬리를 무는 의혹들

행려자로 처리될 뻔한 박 씨의 시신은 사망 이틀 후 유족들에게 넘겨졌다. 여기서 석연치 않은 사건이 또 하나 발생한다. 부검을 의뢰하고 사인을 밝히던 담당 형사에게 전보 발령이 내려지고 사건은 급작스럽게 검찰로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검찰은 박 씨가 “넘어지다 쓰레기통에 부딪혀서 사망한 것”이라고 결론짓고 사건을 종결시켜 버렸다. 그러나 유족들은 얼굴 뿐 아니라 온 몸에 매맞은 투성이인 시신을 보고 어떻게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한다.

부인 노 씨는 의혹을 제기하는 까닭을 하나 더 덧붙인다. “지난 3월 말 담당 검사가 바뀌었어요. 처음에 수사를 맡았던 검사가 변호사 개업 후 저에게 구타에 의해 숨진 것 같다고, 승소할 가능성이 있으니 변호사를 소개해 주겠다고 하더군요. 선임료가 너무 많이 들어 사양했지요. 담당했던 검사가 그렇게 말했는데… 사건이 이렇게 처리될 지 몰랐어요.” 대부분의 의문사는 이렇게 의혹의 실타래가 엉킨 채로 잊혀져 간다.


감옥 폐쇄성 시정 안 돼

감옥의 폐쇄성을 이용한 교정당국의 권위적 태도가 이러한 의문사 진상규명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행형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대부분의 감옥내 의문사 사건에서 교도소 측은 스스로 부검과 수사를 모두 마치고 사인에 대한 결론을 내린 뒤에야 이를 유족에게 알린다는 것이다. 유족들은 의혹이 있더라도 증거나 증인을 확보할 수 없는 감옥의 현실 때문에 진상을 제대로 밝혀낼 수 없는 것이다.

“제발 장례식이라도 빨리 치렀으면 좋겠어요. 남편을 저렇게 누여놓고… 갈수록 병원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사람이 할 일이 못돼요.” 지칠 대로 지친 노성애 씨의 마른 눈가에 눈물자국이 다시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