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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군사대국으로의 숨죽인 발걸음

일본의 주변사태법과 평화 그리고 인권


발족차족의 의미

한참 대학들어가기 어려울 때 유행하던 말이 있었다. "재수는 필수요, 삼수는 선택이다". 그러나 요즘은 그 어려운 대학에 들어가고 난 뒤에도 필수와 선택의 기로에 서지 않을 수 없다. 한참 회사에 들어가기가 힘들기 때문에 외국어를 한 두 개쯤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영어는 필수요, 일어는 선택이라는 말이 유행이 되고 있다.

학생시절에 나도 일어를 선택해 공부한 적이 있다. 우리 사회가 한참 이해하기 힘들어서 이책 저책 읽어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정작 흥미를 느낀 것은 일본어의 말 만드는 구조였다. 그래서 독서다운 독서에는 들어가보지도 못한채 일본어에 빠져 한참을 헤어나오지 못한 적이 있다.

그때 외웠던 말의 대부분을 지금은 잊어먹고 말았지만, 두고 두고 잊혀지지 않는 말이 한가지 남아있다. 다름 아닌 '발족차족(拔ぎ足差し足)'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발부리를 넣었다가 돌부리에라도 걸리면 빼었다 하면서 살금살금 걸어가는 모습을 표현한 말이었다. 숨죽여 걸어가면서도 용이 주도한 모습을 그렇게 잘 만들었을까 싶어서 경탄스러웠다.

하지만 '누끼아시사시아시(拔ぎ足差し足)'를 잊지 않게 된 것은 조어법에 매료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일본의 군사대국화문제에 관심을 갖으면서 잊을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군사대국화의 사생아 '자위대'

모두가 알다시피 일본에는 국군이 없다. 그러나 국군이 없기 때문에 군대적 실체를 갖춘 집단이 존재하지 않거나 전투력(戰力)을 갖춘 상비군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일본에는 약23만명의 자위대라는 군대적 실체와 전투력을 갖춘 상비군이 존재한다. 그리고 영국의 국제전략연구소가 낸 자료(1997/8)에 의하면 이 자위대가 1995년 한해동안 썼던 돈이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3위였다.

그런데 이 자위대는 유감스럽게도 사생아였다. 일본 사람들이 세계에 내놓고 자랑하는 것이 세가지가 있다는데 그 중의 하나가 헌법이다. 그 헌법의 9조에 침략전쟁을 하지 않을 것과 이를 위해 일체의 전투력을 갖지 않을 것을 규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헌법에 일체의 전력을 보유해서는 안된다고 하였기 때문에 이 아이를 국군이라 하지 못하고 자위대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사생아로 놓아두자니 반쪽 취급만 받고 그래서 헌법을 바꾸어서 온쪽 취급을 해보고자 하였으나 결국 이도 여의치 않았다. 전쟁의 참화를 잊지 못하는 민초들의 매서운 눈초리가 히로시마에도 현해탄 건너 금수강산에도 만리장성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온쪽이 만드는 작전을 바꾸었는데 그것은 첫째로 '알고보면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자는 방식이고 둘째는 뒤치닥거리도 잘한다는 인식을 갖게 하여 힘깨나 쓰는데 대한 저항감을 없애는 식이었다. 이른바 PKO협력법(유엔평화유지활동 등에 대한 협력법)은 전자에 해당하고, 미일 신가이드라인에 따른 유사시입법, 특히 그 하나로 지난 5월24일 일본의 참의원을 통과하여 성립한 주변사태법은 후자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주변사태법은 미군의 아시아지역에서의 군사활동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그동안 일본 헌법상의 제약때문에 미국과 일본은 일본이 침략당할 경우에 대비하여 미군이 일본에 주둔할 것, 일본에 있는 미군이나 일본자체가 공격을 받을 경우에 한정하여 공동의 군사행동을 취할 것, 극동 유사시에 미군이 일본시설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을 약속하고 있었다. 미국과 한국의 상호방위조약이 쌍무적인데 비하면 상당히 편무적인 조약의 형태를 빌어 군사조약(미일안보조약)을 맺어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본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군사동맹(집단적 자위권)에 다름아니라는 내외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자위대 온쪽이 만들기 작전

그런데 이번에 개정된 미일방위협력지침과 이에 따른 유사시입법(주변사태법, 물품용역상호제공협장, 자위대법개정)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침략과 관계없는 미군의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군사행동과 일체가 되는 후방지원을 일본이 미국에 약속하기 위해 이를 법제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미일안보조약도 한미상호방위조약처럼 군사행동의 공동주체가 되는 직전단계까지 와있는 셈이다.

발부리를 넣었다가 돌부리에 걸리면 뺏다가 다시 집어넣는 식의 숨죽인 발걸음이 용이 주도하게 의도하고 있는 바는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대한 군사적 출동근거를 확보하는 것이다. 다국적화의 외피를 쓰고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다량으로 투자되어 있는 일본자본을 보호해 달라는 일본 재계의 요청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미국에 의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군사적 패권주의에 편승하여 군사적 역할을 늘려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면서도 새로운 스타일의 군사대국화의 숨죽인 발걸음이 빨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한 입법이 국회를 무사히 통과하였다는 것은 오자와나 나카소네류의 군사대국주의가 보수본류라고 하는 미야자와류의 군사소국주의를 의회에서조차 제압하였다는 것이고 이제 남은 것은 숨죽인 발걸음을 계속할 것이냐 아니면 거친숨을 몰아 쉴 것이냐이다. 하지만 거친 숨소리 앞에 남아나지 않는 것은 아시아와 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인권일 뿐이다.


이경주(경북대학 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