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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평화와 인권 ④

자결권과 미군


억평이나 되는 우리 땅을 공짜로 쓰는 염치좋은 세력이 있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곳은 분명 우리 땅인데 우리가 잠깐 빌려 쓰려면 오히려 우리가 사용료를 내야 한다. 그것도 이따금씩 인상해 주어야 한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주변 지역에선 소음과 수질오염, 토양오염이 심각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 강간과 살인, 강도와 폭력을 당하는 일이 숱하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십 년 동안 머물면서 하루 평균 5건의 범죄를 저질러왔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의 법정에 불려와 제대로 재판을 받은 일은 거의 없다.

그들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고 있다'는 자신에 가득 차 있고, 그들을 데려온 우리의 지도자들은 그들과 불평등하게 맺은 약속을 지키느라 꼼짝 못하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이라는 이름의 그들은 남한 전역에 96개의 기지를 꿰차고 우리의 안보를 지킨다는 주인행세를 하며 이렇게 '원더플 코리아'를 외쳐왔다:

"한국에 있는 미군 지휘관들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군사훈련지역이라고 믿고 있다.

살아있는 적들이 바로 눈앞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광범한 기동훈련장과 광대한 자유사격장이 DMZ 이북에 광대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우리를 쫓아내려고 하지 않는 그리고 세금도 달라고 하지 않는 세계에서 몇안되는 미군기지 중의 하나이다(1978년 미하원군사위원회 보고서 중에서)"

위와 같은 미군 주둔의 폐해에 맞서 일어나기 시작한 운동들이 제일 처음 제기한 질문은 우리가 과연 이 땅의 주인노릇을 하고 있느냐이다. 주인노릇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정치, 경제, 문화적 지위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의 미군 주둔과 그 지위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결정은 애초부터 존중받을 수 없는 실정이다.

한미행정협정으로 통용되는 '주한미군의 지위에 관한 협정'은 평등한 국가간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으며, 다른 나라의 그것과 비교해서도 가장 '불평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어도 법원에서 형이 확정되기 전에 단 1건도 구속된 적이 없는 형사관할권 문제나 타국에 비해 터무니 없이 높은 방위비 분담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우리 땅 안에서 스스로를 식민화 시키고 있다.

유엔헌장에서 최초로 '권리'로서의 '법적 지위'를 확보한 '자결권'은 이후 양대 국제인권협약 등으로 이어지면서 국제사회의 일반적인 법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국제법으로 자리잡은 자결권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가장 보편적이고 대표적인 자결권의 성격은 반식민지성에 있다.

한 주권국가의 정치, 경제, 문화적 지위의 결정은 관련된 인구의 자발적인 소망에 기초하여 평화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국제법의 원칙이 미군과의 관계 속에서 '무법화' 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