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가들이 성범죄자들의 화학적 거세 논란이나, 교도시설에서 자행되는 인권탄압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때마다 빗발치는 반감과 공격은 일상사가 된 것 같다. 가족이 살해를 당하거나 성폭행을 당해도 가해자의 인권을 존중할 수 있는지, 살인자들이 피해자를 죽이거나 성폭행할 때 가하는 폭력의 잔인성을 헤아린다면 과연 인권 운운하는 말들을 나불거릴 수 있는지, 그리고 시민들이 낸 혈세로 흉측한 죄를 지른 사람들의 의식주를 보장하는 것이 올바른지에 대한 지적이 줄을 잇는다.
최근에 터진 몇몇 대형범죄로 말미암아, 사형이나 피의자의 인권보장에 대해서 강경론이 득세하고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사라진 뒤 피의자의 얼굴에서부터 실명이 주요 신문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범죄보도는 마치 엽기적인 추리소설처럼 가해자의 비인간성을 종교적인 차원에서 성토한다. 범죄자들을 더 이상 인간으로 볼 가치가 없기에, 그들이 인간으로서 응당 지니는 권리를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며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세태 속에서 한국계 중국인들을 비롯한 외국인들을 향한 적개심과 부정적 일반화는 위험할 정도로 퍼지고 있다.
인과응보, 정의에 도움이 될까?
과연 일련의 흐름이 좀 더 안전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는 데 도움이 될지 따져볼 때, 노르웨이의 사례를 들여다보면 좋을 듯하다.
노르웨이는 선진국 중에서 아이슬란드, 일본, 스위스, 싱가포르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가장 안전한 나라로 정평이 나 있다. 얼마 전 오슬로에서 알게 된 한 노르웨이의 언론인은, ‘부자나라의 언론보도 행태’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토로했다. 국제적인 차원에서 보면 대형범죄가 드물기에, 다른 나라들이라면 절대로 보도가 안 될 성싶은 ‘소소한’ 사건들이 대형뉴스로 보도되는 일들이 자주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다른 먹거리들이 풍성한데도 버터 품귀 현상이 한동안 노르웨이의 언론을 뒤덮었으며, 노르웨이에 거주하던 인도 부부가 어린아이들에게 손으로 음식을 먹이거나 한방에서 잠을 자는 사건이 ‘아동학대’로 인한 양육권 박탈로 비화되어서 몇 달간 집요하게 헤드라인으로 보도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몇몇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에게 장난을 치기 위해서, 학교 실습실을 온통 쿠킹호일로 뒤덮어서 남학생들이 흠씬 놀란 사건까지 중요 뉴스로 보도되는 현실을 비판했다.
브레이빅이 경찰복장을 했기에 악화된 비극
최근 방문한 노르웨이에서 눈에 띈 것은, 경찰들의 각종 지시를 시민들이 협조적으로 임한다는 점이었다. 노르웨이 소설가에 따르면, 노르웨이에서는 역사적으로 경찰들이 존경받는 직종으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한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 어려운 일들을 묵묵히 수행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뿌리박혀 있어서, 경찰의 지시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일들이 드물다고 한다. 2011년 7월 22일에 브레이빅(Anders Behring Breivik)의 학살극이 터졌을 때, 우또야 섬(Utøya)에서 노동당 노동자청년단(Arbeidernes Ungdomsfylking) 여름 수련회를 진행하던 젊은이들이 경찰복장을 한 채 등장한 그를 보고 놀라지 않은 점도 경찰에 대한 믿음이 집단심성처럼 퍼져 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브레이빅은 다문화주의를 주창하는 노동당의 의제에 찬동하는 젊은이들을 나이를 막론하고 죄인들로 간주한 뒤 기생충을 박멸하듯이 총질을 해댔다.
사건이 벌어진 뒤 얼마 후 우또야 섬을 찾은 노르웨이 기자들은 죄다 경을 쳤다고 한다. 외국인들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심어진 섬에서 왜 숨거나 도망가지 못한 채, 그토록 많은 젊은이들이 불과 한 사람의 저격범에게 살해를 당했는지 납득할 수 없다는 의문을 표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자들은 우또야 섬에 있는 나무들이 실제로 듬성듬성 심어져 있는 데다 가지나 잎이 무성하지 않아서, 원거리에 있는 사람의 형상이 또렷하게 보이는 것을 목도하며, 수많은 사상자가 나온 이유를 마침내 헤아렸다고 한다.
당시 수많은 젊은이들은 구명보트조차 없는 환경에서 무작정 호수에 뛰어든 뒤 오래도록 간절하게 구조를 기다리며 수영하다 이중 상당수가 익사했다. 게다가 섬의 이곳저곳에서 속수무책으로 숨어서 그를 피하던 젊은이들은, 기어코 브레이빅이 등장하자 절박하게 호소했지만 브레이빅의 총탄을 끝내 피할 수 없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모두 77명의 사람들이 무고하게 숨졌다. 이들 중 대다수가 미성년자들이었다. 이밖에 여러 젊은이들이 총상으로 영구 장애를 겪는 일까지 이어졌다.
어린 시절부터 밟는 정당 활동
북유럽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지지하는 정당에 가입해서 단계적인 정치활동을 벌이며 직접민주주의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의원으로 활동하는 대부분의 이들은, 반짝스타처럼 기존 정당에 발탁되어서 등장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몇 년 이상 정당 활동을 풀뿌리부터 수행한 뒤 본격적인 정치인으로 선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건이 벌어졌던 우또야 섬에서 하계 수련회를 진행하던 젊은이들은, 이처럼 사회문제나 정치에 관심이 다분했다.
노르웨이 노동당(Arbeiderpartiet)은 노르웨이에서 가장 좌파적 색채가 강한 정당이 아니지만, 사회민주주의 의제를 채택하고 있는 주요 정당이다. 노르웨이 최초의 여성수상이자 이윽고 세계보건기구(WHO)의 사무총장까지 지낸 그로 하를렘 부른틀란드(Gro Harlem Brundtland)는 무려 12년 동안 노동당 의장으로 지냈다. 브레이빅의 애초 공격목표 중의 으뜸은, 이미 연로한 부른틀란드의 목을 베는 참수형을 비디오로 녹화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부른틀란드는 연설을 마친 뒤 일찍이 섬을 빠져나와서 화를 면할 수 있었다.
학살 후 달라도 너무도 다른 노르웨이의 대응
사건이 벌어진 뒤 노르웨이의 풍경은 유사한 사건들을 겪은 다른 나라들과 매우 달랐다. 불과 하루 동안 혼자 힘으로 77명의 사람들을 학살한 테러리스트를 보며 느끼는 거대한 충격과 분노는 극단적으로 귀결되지 않았다. 사건 직후 사형제 재도입이나 브레이빅을 수사할 때 고문을 해서 여죄나 공범을 캐야 한다는 주장이 간헐적으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사람들은 이 사건 때문에 수많은 문제점을 야기하여 오래전에 폐지된 사형제를 다시 도입하는 것은 그릇되었다는 점을 잊지 않았다. 또한,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향하는 국가라면 제아무리 흉악범이더라도, 인도주의적인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원칙을 대부분의 시민과 정치인들이 공유하게 되었다.
대신에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추모객들은 각자 꽃을 헌화하며, 희생자들의 미처 펴보지 못한 꿈에 다 함께 비분강개했다. 당시 오슬로 전역이 꽃향기로 뒤덮인 풍경은, 전 세계에 감동과 이채로움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브레이빅도 인권을 누리며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나라
노르웨이 사법당국은 브레이빅을 수사하면서 그의 정신감정부터 꼼꼼하게 살폈다. 경찰이나 의회로부터 독립된 의료진들이 전문적이고 섬세하게 그의 정신 상태를 검사했다. 노르웨이에서는 아주 끔찍한 죄를 자행해도, 피의자가 제정신이 아닌 환자로 판정되면 재판을 받지 않고 정신병동에 ‘환자’로서 입원하게 된다.
사건 초기부터 브레이빅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 가이르 리페스타드(Geir Lippestad)는, 브레이빅이 노르웨이가 점증하는 이슬람 신자들과 전쟁을 벌이는 전시 상태로 착각하고 있으며, 신경증적인 착시와 망상에 사로잡힌 광인이라고 주장했다. 최초의 정신감정을 수행했던 의료진들 역시 유사한 보고서를 작성해서, 브레이빅이 교도소에 수감되거나 정식으로 재판을 받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미친 사람이 저지른 범죄라고는 차마 납득할 수 없을 만큼, 범죄 수법이나 대응방식이 조직적이고 분명하다며 정신감정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브레이빅은 노르웨이에서 가장 삼엄한 경비시설을 갖춘 일라 교도소(Ila fengsel og forvaringsanstalt)에서 수감된 채 수사 및 재판을 받고 있다. 그가 갇힌 곳은 경비만 다른 교도소에 비해서 강할 뿐, 노르웨이의 여느 재소자들이 누리는 권리를 그도 상당 부분 누리고 있다. 예컨대, 그는 외부로부터 오는 편지들을 받아볼 수 있으며, 수사과정에서 어떠한 고문이나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지 않는다.
마침내 재판장에 선 브레이빅
브레이빅이 마침내 법의 심판을 정식으로 받게 된 전환점은, 노르웨이 사법부가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새롭게 정신감정을 했기 때문이다. 2차 검사에서는 최초의 정신감정과 상반되는 결과가 나와서, 브레이빅은 교도소에 수감될 수 있는 피의자 신분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전 세계에서 그를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외신 기자들은 브레이빅의 재판과정을 목격하며 충격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노르웨이 사법부는 시종일관 브레이빅이 재판을 받는 다른 피의자들이 누리는 권리를 100% 가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말끔하게 차려입은 뒤 자신의 극우적인 반이슬람 이데올로기를 적극 설파하는데 재판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게다가, 여성 검사인 잉가 베예르 엥그(Inga Bejer Engh)가 질문할 경우 연거푸 답변을 거부하였다. 이밖에, 그는 재판 내내 노동당 하계캠프에서 살해된 청소녀(년)들을 무참히 죽인 것에 대해서 추호도 반성하거나 회개하지 않았다. 대신에 자신의 살해동기를 장황하게 발언하지 못하게 할 경우 재판 자체를 거부하겠다고 벼르는 판에, 결국 판사가 브레이빅의 청을 들어주어야 했다.
재판 내내 노르웨이가 갈수록 이슬람화되고 있으며, 노동당 하계캠프에 참석한 이들은 노동당의 그릇된 다문화주의에 찬동하는 아이들이기에 무고하다고 볼 수 없으며, 다시 사건 전으로 돌아가더라도 똑같은 짓을 반복하겠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은 노르웨이를 이슬람화로부터 지키는 파수꾼이었기에 ‘정당방위’라고 주장했다. 자신을 즉각 석방하거나 형을 선도할 거면 차라리 사형을 시키라고 요구했다.
브레이빅의 재판이 주는 트라우마와 교훈
그가 어떠한 참회도 나타내지 않은 채 일방적인 궤변을 거침없이 둘러댈 때, 재판장에 가득 모인 유가족들과 생존자들은 또다시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극소수를 제외하고 브레이빅에게 공격적인 말을 내뱉거나 발언 자체를 방해하거나 그에 대한 강경한 처우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이들 중에서는 브레이빅이 만일 정신병자로 판정될 경우, 그가 교도소가 아닌 병원에 수감되어서 치료를 받는 것에 찬성하는 이들도 적잖았다.
판사와 검사들이 브레이빅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서 대하는 것을 보며 놀란 이들은 주로 외국 취재진들이었다. 그들은 브레이빅이 자행한 짓을 떠올리고는, 그가 노르웨이 사법체계에서 누리는 ‘인권보호’에 반감 어린 충격을 고백하기도 했다. 또 다른 외국인들은 그를 향한 반감이 정점에 오른 시점에서, 그에게 방어권을 보장해주는 것이 감명적이라고 격찬하는 이들도 있었다.
노르웨이에서 만난 한 운동선수는, 브레이빅이 저지른 짓을 사법체계가 똑같이 복수하는 것은 성숙한 태도가 아니라고 토로했다. 모질게 대하며 최대한 가혹하게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게 만드는 것이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를 비롯한 수많은 노르웨이인들은, 이번 사건을 겪으며 노르웨이 사회의 성숙함과 연대의 힘을 절감하게 되었다고 나지막하게 주장했다.
지난 4월 26일 오슬로의 영스토리겟(Youngstorget) 광장에서는 노르웨이에서 이례적으로 4만 명이 운집해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연에 함께 했다. 한때 반전가요로 불리다가 지금은 노르웨이에서 널리 사랑받는 동요인 <무지개의 아이들>(Barn av Regnbuen)을 가수 릴레변 닐센(Lillebjørn Nilsen)과 함께 남녀노소가 따라 불렀다. 이 노래는 어린이들에게 마르크스주의적인 사상을 불온하게 불어넣는다며 브레이빅이 지목해서 반대하는 노래였다. 궂은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추모객들은 꽃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평화를 바랐다. 광장에 모여서 불행하게 숨진 사람들을 추억하며, 노르웨이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이자 다민족주의를 지향하는 나라로 가는 도정이 멈추지 않기를 공유하는 것 같았다.
수감자의 재사회회를 돕는 교도소
흔히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의 수감시설은 기숙사 같다는 비유 및 야유를 동시에 듣는다. 모든 수감자들이 텔레비전과 조그마한 책걸상, 변기 등을 갖춘 일인실에서 지낸다. 모범수들은 종종 귀휴를 나갈 수도 있으며, 좀 더 열린 수감시설에서 지내다 출소할 수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무기징역이 실제로 21년형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무기징역 수감자들은 만기를 채우지 않고 일찍 출소한다. 어느 미국인 기자는 브레이빅에 대한 인도주의적 처우와 인권을 중시하는 교도행정이 황당무계하다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노르웨이는 수감자들을 응징하는 것에서 끝날 경우, 재소자들의 재사회화를 높이기 어려워서 재범 비율이 높아진다고 본다. 수감자들을 엄격하고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나라들보다 노르웨이나 스웨덴의 재범률이 압도적으로 낮다는 것이 정설이다. 무슨 죄를 지었든 복역기간 동안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다시금 법을 준수하는 시민으로 사회에서 살 수 있게끔 돕는 교도행정이 실현될 때, 인과응보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범죄를 줄이는 해답이 찾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브레이빅의 재판과정에서 우리가 고민하고 토론해야 할 점들은, 브레이빅 같은 사람이 세계 어디에서나 나올 수 있는 형국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각성일 것이다. 노르웨이 사법부가 온갖 궤변과 핑계, 일그러진 주장으로 가득 찬 그의 발언을 인내심 있게 경청했던 것은, 이 사건을 통해 철저히 배워야 한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예컨대, 그와 유사한 생각을 할 법한 극우집단의 논리와 추후 행동을 시사해주는 것이기에 중요할 수 있다. 더불어, 그를 속전속결로 재판한 뒤 가장 강경한 형을 선고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노르웨이 사회가 이번 학살사건에서 얻어야 할 시사점과 교훈을 침착하게 배우면서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궁극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통찰 때문이다.
브레이빅의 정체성(노르웨이 태생 백인)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기 전, 수많은 이들은 테러리스트를 중동 출신의 이민자라고 속단했다. 사건 직후 적잖은 이민자들이 노골적인 인종주의 공격을 받은 사건을 회자하며, 노르웨이에 남아있는 인종주의적 편견을 반성하고 있기도 하다.
강경처벌만이 해법인가?
한국에서는 언론을 뒤덮는 대형 사건들이 보도될 때마다, 이를 살인자들 개개인의 인성 문제로 국한해서 바라본 뒤 별다른 개선사항 없이 잊히곤 한다. 흉악범들에게 법정최고형을 판결한 뒤 평생 사형수로 살게 하면, 한국사회는 좀 더 안전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거듭날 수 있을까. 범죄가 왜 계속 증가하는지, 사회적 약자들이 가해자 또는 피해자로 왜 가장 자주 등장하는지, 엄격하게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출소한 이들 중 왜 재범을 저지르는 비율이 우려할 만큼 높은지 등에 대해서, 지금 노르웨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브레이빅의 재판과정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가득하다.
덧붙임
박정준 님은 자유기고가입니다. 이 글은 프레시안에도 동시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