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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현장스케치> 버마 민주화 촉구집회

“위험과 투옥을 감수하겠다”


검은색 관위에 흰색 국화가 놓여졌다. 이윽고 한 버마인이 동시통역사의 입을 빌려 절규했다.

“인권은 국권보다 우선 돼야 합니다. 국민들의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국가는 국민의 이름으로 심판 받아야 합니다. 버마의 국회는 몇 년동안 열리지 못하고 있으며 모든 대학이 폐쇄 당해 20대 청년 중에는 대학졸업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버마 정부는 민주화를 요구한다는 이유로 양곤대학의 학생회관을 폭파해 백 명의 학생들을 살상했으며 현재에도 삼천 명 이상의 국민들이 구속되어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버마 정부를 심판해야 합니다.”

7일 낮 12시, 집시법 거리조항에 묶여 대사관 앞 집회를 포기해야 한 20여명의 버마인들은 버마대사관에서 1백미터 떨어진 곳에서 한국 학생 및 인권단체회원 40여명과 함께 ‘62년 7월 7일 양곤대학 대학살’을 추모하는 집회를 열고 버마의 민주주의를 촉구했다.

꼬리가 유난히 긴 새 한마리가 그려진 머리띠와 완장을 차고 거리로 나선 ‘버마 민족민주연맹’ 한국지부 소속 버마인들은 그 새를 ‘버마 민주화의 날까지 결코 죽지 않을 상징의 새, 불사조’라 칭하며 자신들의 결의를 밝혔다.

“(불법체류로)언제 본국으로 송환될 지 모릅니다. 길을 가다가도 경찰을 보면 숨게돼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본국으로 송환되면 끝입니다. 하지만 버마의 변화와 민주주의, 인권을 이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몇십년이 흐르도라도…”(모조, 24)

버마 외곽 산을 타고 국경을 넘어 인도에서 여권을 발급받아 한국에 들어왔다는 불법체류자 데이 엉(29) 씨도 “버마에 있는 가족이 그리워 한달 전화비가 30~40만원 이상 들지만 버마에 민주가 없는 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며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위험과 투옥을 감수하겠다”고 밝혔다.

집회를 마치고 용산역으로 자리를 옮긴 이들은 서툰 한국말과 바디 랭귀지를 동원해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버마의 상황을 알리며, ‘버마 민주화와 대학교육 재개’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 금새 익어버린 얼굴과 땀으로 세탁된 옷들도 그들을 멈출 수 없었다. 한 장 한 장 늘어가는 서명용지 속에서 버마 민주화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듯 했다.

한편 버마 대사관 측에 ‘버마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항의서한’을 전달하러간 최경송(과천시 시의원) 씨 등 집회 참가자 대표들은 버마 대사관 직원들과 언성을 높였다. 버마 대사관의 일등서기관은 대표단과의 일체의 대화를 거절하는 한편 심지어 햇볕을 피하기 위해 장소를 옮기자는 요구도 묵살한채 “서류만 빨리 놓고 가라”는 오만하고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