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인권법안
임시국회가 끝났다. 하지만 ‘언제 국회가 열렸던가’하는 물음이 많다. 인사청문회 관련법, 내부고발자 보호법, 특검제, 인권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 인권․시민․사회단체가 줄기차게 요구해왔고 정부도 일부 안을 마련했다는 개혁법안들이 여전히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본 지에서는 4회에 걸쳐 그중 인권관련법들의 현황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인권법을 올바로 제정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현실의 아픔과 인권 보장이 필요한 현실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법은 이와 같은 현실의 아픔을 해결하기 위하여 만들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올 3월 30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소위 인권법안의 철회를 외치며 지난 4월 단식투쟁을 벌였던 인권활동가들의 호소문이다.
김대중 정권이 대표적으로 내세운 인권정책은 인권법안 마련과 그를 통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설치를 통해 가시화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환영해야 할 인권단체들이 오히려 철회를 요구하며 단식농성까지 하는 사태가 벌어졌었다.
법무부의 독단적인 추진으로 여권 내에서조차 갈등을 빚은 인권법안은 국가인권기구를 충분한 독립성과 실질적 권한을 갖추지 못한 ‘생색내기’용 허수아비 기구로 전락시킬 가능성을 일치감치 안고 있었다. △감시의 대상이 되야 할 법무부가 인권위의 상위기관이자 중심적인 인권업무 수행기관으로 설정된 점 △ 조사대상이 되는 ‘인권침해행위’가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규정된 점 △ 인권위의 조사권이 갖는 심각한 제약 등이 주요한 문제로 지적되었다. 이 과정에서 법무부는 끈질기게 ‘법인의 위상’을 고집했고, 민간단체는 ‘독립적인 국가기구’를 요구했다.
결국, 70여개 민간단체가 결집한 ‘올바른 국가인권기구 실현을 위한 민간단체 공동대책위’는 법무부 인권법안의 철회를 주장하여 관철시키게 된다.
문제는 그 이후이다. 민간단체는 법무부를 눌렀다는 소리를 듣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인권법과 국가위원회의 설치가 국제기준에 걸맞게, 명실상부한 인권보장 기구로 자리잡기를 원했다. 그런데 한 발 물러선 듯 보이는 정부의 인권법 논의는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좀체로 떠오를 줄 모르는 상태다. 일부에서는 성급하게 정부가 민간안을 따르기로 결정했다는 보도가 흘러 나오기도 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민간단체가 준비한 인권법안은 아직 공개된 바 없으며, 정부와 민간단체간의 공식적인 논의의 자리가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정부와 민간단체간의 시각차는 여전히 존재하며, 철회의 된서리를 맞은 인권법안은 여전히 정부 내에서 이런 저런 방향을 모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