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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죽음에 대한 예우

얼마전 가까운 친지의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13년간을 중증 뇌성마비를 앓으며 살다가 저 세상으로 갔다.

아이의 부모는 물론이려니와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깊은 슬픔 속에서 아이를 보냈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픔을 위로하려고 그랬다고 이해를 하려고 했으나 나를 좀 의아하게 했던 몇몇 사람들의 반응도 있었다. 일테면, 아이가 저 세상으로 간 것이 실은 그렇게 나쁜 일만도 아니라는 견해가 있었다는 것이다.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제 힘으로는 전혀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 아이가 저 세상으로 간 것이 어쩌면 아이를 위해서나 아이의 부모를 위해서도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는 나로서는 ‘섬뜩한’ 논리를 피력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한 세상을 살만큼 산 사람들이었다. 한 세상을 살만큼 살아봐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이미 알아서 그런 말들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세상을 아직 제대로 다 살아보지 못해서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험난한 곳인지 몰라서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한 죽음을 두고, 더군다나 그 아픈 몸으로 겨우 13년을 살다간 한 어린 영혼을 두고 그런 소리를 해서는 안된다, 라는 강한 반발의식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세상이 아무리 무섭고 험난하다 하더라도 그래도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은 살아야 하고 살 수 있어야 하고 살수 있도록 도우며 살아야 하는 것이 생명 가진 사람의 의무가 아니겠는가. 이 세상은 그저 건강하고 가진 것 많은 사람들만 살아야 하는 곳인가. 실지로 그런 것도 사실이다. 이 세상이란 곳은 건강한 사람만, 돈 많은 사람만, 권력 가진 사람들만이 살아가기 좋은 곳으로 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니 그래서 더욱 우리는, 사람이기에, 그리고 우리가 진정한 사람이려면 이 세상 살아가기 힘든 조건을 가진 이를 도와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놓고 우리는 무슨 말을 해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즈음의 세상을 보면 너무나 살아있는 것만을 찬미하여 죽은 이를 천대하는 것이 아주 당연하게 되어 있는 분위기로 되어 있다.

그것이 나는 무섭다. 죽음을 예우하지 않는 사회, 그 사회가 바로 죽은 사회가 아닐까. 사람이 죽으면 쓰레기 치우듯 그저 빨리빨리 치워버리는 사회.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살아있는 것으로 할려면 죽은 이를 대접해야 한다. 국가적 차원의 천도제는 지내지 못하더라도 한 죽음에 대한,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조차도 나 몰라라 한다면, 그리하여 그 죽음들을 영원히 쓰레기 매립하듯 역사 속에 묻히게 한다면 우리의 사회는 앞으로도 끝없는 죽음의 사회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