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우리 사회 인권문제에 대하여 관심도 없고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도 없으면서 유독 북한 인권문제만을 극성스럽게 밝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인권단체의 '입장표명'을 요구한다. 물론 나는 그런 '사상검증'을 받을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러나 최근에 북한의 기아사태와 탈북 난민의 규모가 심각해지면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은 이제 과거 독재정권에 빌붙던 극우세력만의 것이 아니다.
탈북자들은 70년대만 해도 북한이 "잘 살았"으며, "인민들은 체제의 도덕성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그런 북한이 못살게 되고 긍지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은 80년대 중반 이후라고 추정된다. 기본적으로 미국에 의한 오랜 봉쇄의 괴로움을 허리띠 졸라매며 견뎌야 했다. 특히 1990년을 전후한 소련·동구 사회주의의 붕괴는 사회주의 세계경제에 의존하던 북한을 결정적인 고립상태로 몰아넣었다. 1991-2년에 중국이나 소련과의 특혜무역이 중단됨과 동시에 여러 사회주의국가에 산재해 있던 북한 수출품 시장도 사라져버렸다. 석유 수입이 거의 불가능해지면서 공장들은 조업을 중지했으며 1995년에는 치명적인 자연재해를 겪었다. 대략 이와 같은 사정이 오늘의 북한 인권문제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권운동 그 자체는 특정한 정치세력의 목적에 봉사하지 않지만 특정한 인권현상은 그것을 만들어내는 정치현상과 떼어서 생각할 수가 없다. 북한의 일그러진 인권상황은 분명 비판되어야 한다. 그러나 세계 도처에서 횡포를 일삼는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북한에 대하여 가하는 압박을 인식함이 없이 '보편적 인권'을 앞세우면서 북한 인권상황을 비판하는 인권운동은 자칫 미국을 위한 정치선전으로 전락하기가 쉬울 것이다.
물론 나는 '보편적 인권'을 주장하는 인권운동가이다. 그러나 인권운동가는 마땅히 '보편' 속에 숨어 있는 함정을 항상 눈 부릅뜨고 경계해야 한다고 믿는다. 2차 대전 이후 인류의 '보편적 인권'에 대한 생각은 비약적으로 발전해왔으며, 인류는 "내정간섭"이라는 비난을 받음이 없이 다른 나라 인권문제를 비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보편적 인권'은 적대적인 나라를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서의 구실을 놀게 된다. 이 딜레머를 극복하지 못하면 인권운동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도와준다'는 관점이 없는 모든 북한 인권문제 비판은 정치선전, 우리 사회 인권탄압에 면죄부를 주고 싶거나 북한 체제를 무너뜨리고 싶은 정치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인권운동가로서 북한(민중)을 도와주기 위하여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싶다. 그러나 나의 이 소망은 바로 나에게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입장표명'을 요구하는 세력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서준식(인권운동사랑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