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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현장> 한 철거민의 죽음


"저것들 다 죽여서 쓸어 버려야해. 왜 더럽게 그러구 살아. 깨끗하게 재개발하면 좋지. 미친것들…"

관악구청 앞 횡당보도를 건너는 한 행인이 이런 말을 내뱉고 지나갔다. 철거민들의 악에 바친 욕설이 구호와 함께 쏟아진다. 4일, 구청 앞에 모인 봉천 3동 주민 20여명은 강제철거를 비난하고 가수용단지와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고갯마루에서 내려다 본 봉천3동은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시장길을 쫓아 올라간 철거대책위원회 사무실 주변 곳곳에는 산처럼 쌓인 건물잔해와 듬성듬성 남은 빈집만이 마을의 흔적을 전하고 있다. 이제 재개발대상인 옛집들은 사람들과 함께 많이 자취를 감추었다.

이런 동네에서 한 철거민이 죽었다. 이형재(52) 씨는 지난 31일 단식 15일만에 숨을 거두었다. 그와 잘 알고 지내는 주민은 찾아낼 수가 없었다.

"원래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야. 오래 전에 부인하고도 헤어져 혼자 살았지"라고 봉천3동 서정철 철대위 위원장은 말한다. "팔순 넘은 어머니가 밥 해주러 한번씩 들렀는데 술만 마신 지 보름째 였다니…쓰러진 후 119로 병원에 후송되면서 숨을 멈췄어." 한 주민은 죽기 전에 교회에서 만났지만 기력이 없어서 병이 난 줄 알았지 밥을 굶어 그런지는 아무도 몰랐다고 전한다.

주민 전숙 씨는 "철거민들은 그동안 싸우면서 겪은 좌절로 인해 가슴에서 불덩이 같은 게 치밀어 오른다"고 토로했다. 또한 철거민 생활이란 자다가도 발자국소리나 대문소리가 나면 놀라 깨고, 포크레인소리나 철거하는 소리에도 가슴을 졸이며 '마음의 병을 키우는 생활'이라는 것이다. 이웃 이영숙 씨도 "철거민들은 특별한 대상 없이 화가 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자식 같은 놈들이 두들겨 패며 이사가라고 욕설을 퍼붓는데 견딜만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고 되묻는다. "그를 죽인 것은 세상에 대한 비관과 좌절감"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이날 오후 1시경 또 빈집화재가 발생했다. 주민들은 "생가 옆 빈집화재는 떠나라는 위협을 의미한다"고 했다. 지난 2월 27일 발생한 사회복지관 화재 이후 5․6일에 한번씩 빈집화재가 발생하고 있다. 경찰과 소방서는 지난 여름부터 철거민들을 위협해 온 이 수십 건의 빈집 화재에 대해서 아무런 조사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이 저녁 짙은 소독약 냄새와 포크레인의 소음은 봉천 3동 7-2지구의 몇 안 남은 담벽의 "쇠파이프를 들고 다니며, 화염병을 던진 자를 보았냐"는 경찰의 벽보와 참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