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화해가 우리 곁에 기정사실로 자리잡았다.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실질적상징적 변화가 물결처럼 출렁인다. 이 변화에 대한 정치적 분석은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인권의 입장에서 보는 남북 문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한반도 긴장완화가 남한의 인권운동에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또는 남한의 인권운동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있을까? 하는 최소한의 질문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남북화해는 한국 인권운동사의 새로운 차원 변화를 뜻한다. 즉, 민주화 운동과 동의어였던 인권운동 제1세대와 남북대결 유산인 국보법으로 상징되는 인권운동 제2세대를 뒤로 하고, 포스트 냉전시대로 가는 인권운동 제3세대가 개막된다는 말이다.
포스트 냉전시대 인권운동의 특징은 무엇인가? 우선 인권담론의 정치화를 들 수 있겠다. 인권운동 제1, 2 세대의 본질적 과제는 인권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 인가였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인권의 알파요 오메가는 인권의 법치화 담론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념의 압력을 인권규범이라는 보편성으로 막아내기 위해서는 법의 지배에 호소하는 편이 제일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이념적 압박 요인이 줄면 줄수록, 인권가치의 효과적 배분과 정례화, 자유권과 사회권의 통일적 추구 등을 위한 정치적 감수성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지게 마련이다. 이 말은 인권의 법치화가 소멸된다는 뜻이 아니라, 법치화의 토대 위에서 정치화의 필요성이 증대된다는 말이다.
포스트 냉전시대 인권운동의 두 번째 특징은 통치와 인권 사이의 인과관계가 역전된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의 인권운동은 큰 틀의 통치 구도 아래에 놓인 종속변수에 지나지 않았다. 체제가 인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권운동이 거기에 대응하기도 바빴다. 이른바 치료적 인권운동의 현실이 그러했다. 그러나 향후 인권운동은 한반도 공존의 전제조건을 제공하는 하나의 독립변수가 될 것이다. 정치적 이념의 공백을 채울만한 담론으로서 인민의 삶의 질과 인권만큼 호소력 있는 주장도 드물다. 인권이 통치 양상을 좌지우지하고 예방적 인권운동을 펼치며, 국정에 함께 참여하는 공치(共治)의 시대가 반드시 오게 된다.
끝으로 포스트 냉전시대 인권운동의 마지막 특징은, 남북한 통치세력의 정-정 연합에 대한 남북한 민중의 민-민 연대의 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되겠다. 민족화해의 기쁨 앞에서 정-정 연합의 경제 우선적 접근, 국가주의의 무비판적 수용과 같은 문제가 묻히고 있지만 이것에 대한 분석과 입장정리가 인권운동 차원에서 언젠가는 필요하다. 이것은 장기적으로 민-민 연대의 필요성을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결론적으로, 탈냉전 시대의 우리 인권운동은 정치에 대한 감수성이 강화된, 공치의 한 주체이자 남북 민-민 연대의 한 고리로서 새 시대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시민사회단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