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 대표자들이 국회 앞에서 연이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때문이다. 현재 국회 법사위에서 인권위법안을 심사하고 있지만, 현재 결과는 인권위의 실효성과 독립성을 담보하기엔 턱에도 안 차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인권신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그 장치에 실효성을 부여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다. 또 이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이념적 차이나 특정 사회세력들간의 이해관계가 격렬히 충돌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토록 인권위법이 난산에 난산을 거듭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로지 법무부를 비롯한 검찰의 집단이기주의와 거기에 영합한 정치인들 때문이다.
지난 3년간 법무부 등은 인권위를 허수아비로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해 왔다. 그 집요함 앞에서는 몸서리가 처질 지경이다. 그들 또한 ‘인권위’ 설치의 대의를 부정하진 못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인권위 설치가 기정사실로 된 순간부터, 법무부 등은 철저히 ‘인권위’의 손과 발을 잘라내는 데 주력했다. 국가에서 월급 받으면서 가용한 모든 ‘논리’를 만들었지만, 그 어떤 논리도 ‘인권을 보장’하려는 관점에서 제시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들에 대한 ‘감시․견제기능’을 약화시키고, 그 동안 누려왔던 기득권을 지키려는 데 있었을 뿐이다.
지난해 집단폐업이라는 방식으로 실력행사에 나섰던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는 차라리 ‘솔직하고 노골적’이어서, 그들이 국민건강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반면 법무부를 비롯한 검찰의 집단이기주의는 ‘논리’로 포장돼 교묘하게 감춰져 있어, 제동을 걸기조차 어렵다는 데 더 큰 심각성을 가진다. 그럴싸한 논리로 법의 이름 뒤에 숨기 때문에 이들이 공공을 위해 일한다는 ‘오해’에서 깨어나기 힘든 탓이다.
법무부는 자신이 ‘인권의 주무부서’라는 논리로 인권위법에 대한 개입을 합리화해 왔다. 그러나 살아있는 우리의 역사와 현실은 그들이 오히려 인권감시 대상이라는 사실을 웅변해 준다. 더구나 자신의 지위를 악용해 인권신장의 대세를 가로막는 행위는 국민이 위임한 권력의 한계를 명백히 벗어난 일이다. 더 이상 억지부리지 말라. 검찰의 충실한 입노릇을 자임하고 있는 법사위 내 일부 국회의원들에게도 같은 경고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