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97년 한총련 투쟁국장 김준배 씨 사망사건에 대한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단순추락사’라던 검경의 결론과 달리, 김 씨가 사망직전 경찰에게 폭행 당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왜(!) 4년전 수사과정에서는 이 어마어마한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냐는 점이다. 검경의 수사능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일까? 그렇게 봐주고 넘어가기엔 석연치 않은 대목이 너무도 많다. 수사의 기본인 ‘목격자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사체에 찍힌 신발자국 등을 근거로 제기됐던 구타의혹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사건발생 하루만에 수사는 종결됐다. 부검감정서와 국과수의 감정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수사당국이 의도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당시 사건을 지휘한 정윤기(현 영월지청장) 검사를 소환할 필요성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정 검사는 장문의 글을 통해, “(자신이) 사망자체와 직․간접 관련이 없기 때문에 ‘피진정인’으로 출석할 수 없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사건은폐 의혹이 제기된 이상, 지휘책임자 정 검사는 증거인멸 혐의를 받는 ‘피의자’의 자격을 갖기에 충분하다. “전화와 서면으로 충분히 밝혔다”는 정 검사의 주장도 수사기관 종사자로서는 ‘상식 이하’의 궤변이다. 피의자들이 ‘전화와 서면으로 충분하다’고 해명할 때마다 정 검사는 조사를 종결지을 텐가? “(자신의) 소환이 검찰업무의 본질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에선, ‘검찰은 조사대상일 수 없다’는 투의 오만함마저 배어 나온다.
‘철저한’ 상명하복 체계로 움직이는 검찰이기에, 정 검사의 출석거부는 검찰의 조직적 저항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는 수사권력을 독점해 온 검찰이 스스로 ‘치외법권’의 특권층으로 군림하는 게 아니고 무엇인가? 우리는 국가인권위 설립과정에 그토록 개입하려 했던 검찰의 본심을 정 검사의 ‘고백’을 통해 적나라하게 확인한다.
검찰권력이 스스로에게 메스를 들이대지 못한다는 것은 역사와 현실에서 검증된 사실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의 활동도,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검찰의 조직적 저항을 충분히 예상한 바 있으며, 정 검사 파문은 그 시작일 따름이다. 진상규명위에 강제조사권을 부여하는 등의 제도적 개선이 뒤따르지 않는 한, 이처럼 ‘눈뜨고 당하는’ 일들은 끊임없이 되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