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도, 민주주의도 더 이상 없다
용산에서 6명이나 죽는 대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을 훌쩍 넘겨버렸다. 2009년 1월 20일 이 나라의 인권이 죽은 날이다. 그리고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했던 2월 9일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통째로 죽은 날이다.
철거민들이 용역의 폭력을 피해, 생존하기 위해 망루에서 투쟁하는데 생명권조차 보장받을 수 없다면 다른 인권은 설 자리가 없지 않은가. 기껏 30여명의 철거민들을 진압하기 위해서 동원되는 국가공권력, 그리고 경찰 특공대의 폭력을 보라. 설령 철거민들이, 정권과 한나라당이 말하는 폭력집단이고, 테러집단이라고 해도 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공권력 행사는 잘못된 게 아닌가.
그로부터 20일, 검찰 수사가 발표되는 동안 대한민국의 정부가 보여줄 수 있는 반민주적 행태는 모두 보여주었다. 대통령은 국민 5명의 죽음에 대해서는 애도의 뜻을 표하지 않으면서 특공대 한 명의 죽음에는 안타까움을 표시하더니,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는 ‘아까운 사람’으로 표현하였다. 그런 대통령의 뜻을 철저하게 받들어서 진행된 검찰 수사결과는 처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언론들이 쏟아내는 각종 의혹들은 뒷전으로 돌린 채 ‘전철연=폭력’이라는 프레임을 생산하는 데만 모든 힘을 집중했고, 이것은 어느 정도 여론을 돌리는데 기여했다. 그래서 철거민들의 망루 투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정치세력은 뒤로 빠졌으며, 재개발조합과 구청, 철거용역업체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힘인 건설자본들은 계약서를 통해서 그 실체가 드러났음에도 수사선상에도 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청와대가 나서서 언론조작을 단행한 사실이 드러나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유를 따지지 않고 ‘용산참사와 관련된 집회는 무조건 불허한다’는 기본방침을 세워놓은 정부는 매일 청계광장을 수십 대의 전경버스로 원천봉쇄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가 총체적으로 파괴되었음을 이보다 더 생생하게 증언할 수 있을까.
용산참사로 얻는 교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용산 문제는 더 이상 중요한 이슈가 아닌 것처럼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억울하게 죽고도 폭력집단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쓴 5명의 열사들을 장례 치룰 수는 없는 형편이다. 무엇 하나 해결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용산 4구역 참사현장에서 용역과 경찰들이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재개발 조합은 2월 6일에 이어 26일 조합 총회를 열어 애초의 계획대로 재개발 사업을 재개하기로 결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용산구청장과 친분관계에 있는 이들이 재개발조합과 정비사업체의 대표이고, 시공업체의 간부가 철거용역업체의 간부로 행세하고 있고, 이미 폭력조직 서방파가 철거용역으로 동원되고 있다고 제기된 이때, 아무런 문제의 해결 없이 다시 재개발이 시작되려 한다. 주거권이 보장되는 재개발 사업은 원주민들의 재정착이 가능한 개발이어야 하고, 세입자들의 주거권이 보장되는 재개발이어야 하고, 폭력에 의한 강제퇴거가 아닌 평화적이고 합리적인 재개발이어야 하고, 건설업체 등 소수만이 이득을 남기는 재개발이 아니어야 한다. 한 마디로 ‘주거권’이라는 인권이 보장되는 재개발이어야 한다.
사람이 6명이나 죽고, 수십 명이 부상당하는 죽음의 재개발의 모습을 보고도 이에 대해 눈 감는다면 제2의, 제3의 용산 참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용산 4구역을 재개발의 모델로 만들려는 사회적인, 정치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잠재적인 용산참사를 막는 길은 이 길 뿐이다. 서울시의 한강 르네상스와 같은 방식의 재개발을 저지하고, 뉴타운 중심의 재개발을 전면 재검토하고, 사람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재개발을 국가적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용산참사로부터 얻어야 할 교훈이다.
아직 남은 2월 임시국회
한나라당이 MB표 악법들을 통과시키겠다고 마지막까지 기회를 엿보고 있는 2월 임시국회가 오는 3월 3일까지 이어진다. 2월 27일, 3월 2일의 합의된 본회의 일정과 마지막 날이 아마도 한나라당이 노리는 결행의 날일 수 있다. 한나라당은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를 골자로 한 경제관련법안들과 언론장악을 노리는 언론관계법안 등 18개 법안을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할 핵심법안들로 정리해 놓았다. 이는 곧바로 야당과 진보운동진영이 막아야만 하는 악법 리스트이기도 하다. 야당과 진보진영의 입장에서는 앞으로 1주일만 잘 버티면 2월 임시국회에서도 악법을 저지하는 성과를 내게 된다.
물론 이와 같은 상황은 야당이나 진보진영이 잘 대응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니다. 용산참사로 인해서 한나라당이 입법전쟁을 치룰 만한 시간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였고, 또 친박연대 등 박근혜 세력과 친이세력의 갈등으로 인해서 한나라당이 분열되고 있다는 점, 오로지 청와대의 지시를 따르는 것에만 길들여진 수동적인 태세 등으로 인해서 악법을 밀어붙이기는 사실상 힘겨운 상태라는 점이 보다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3월에 추경예산을 핑계로 다시 임시국회를 열자고 하지만, 민주당은 이에 불응할 태세다.
그런데 4월에는 보권선거가 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중간평가적 성격을 띠게 되는 이 보궐선거의 결과가 어떠냐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속화될 것인가, 아니면 탄력을 얻고 현재와 같은 정책 기조들을 이어갈 것인가가 판가름나게 된다. 야당으로서도 정치적 회생 여부가 이를 통해 입증될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지금 정치권은 벌써부터 보궐선거 준비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론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 낙제점을 주고 있고, 한나라당도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야당들이 잘 한다면 보궐선거는 한나라당 패배로 귀결될 수 있다.
정세에 영향을 미칠 변수들
환율이 다시 1,500원 선을 돌파했고, 한국경제는 위기의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세계 금융부문의 위기가 곳곳에서 터질 징후들을 보이고 있어서 한국 경제는 예상보다 더욱 어려운 대외적인 조건을 맞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노총이 참여하는 노사민정 대타협이 노동자의 임금 동결과 삭감을 전제로 한 일자리 보전으로 합의되었지만, 여전히 사용자 단체들은 더 자유로운 해고를 주문하면서도, 정부가 추진하려는 청년 인턴제에 대해서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줄 일이 없는데 인턴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나름의 합리적인 반발이 일고 있다. 대기업들은 때를 맞추어 대졸 초임자들의 임금을 대폭 삭감하는 것으로 ‘자본의 구조조정’이 아닌 ‘노동의 구조조정의 방향’을 밀어가려고 한다. 부실기업들에 대한 10조원대의 구제금융이 얘기되고 있지만, 외환위기 때처럼 재벌들 살찌우기에만 투자될 공산이 크다.
이와 같은 경제상황에 대한 정부 정책, 재벌 대기업들의 대응은 실업, 비정규직 문제가 폭발할 시점을 앞당길 것이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막바지 벼랑에 내몰리는 사람들의 투쟁 폭발이 어느 때라도 가능한 상황이다. 여기에 일제고사의 후유증에 대한 반발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경제위기가 심화되면 정부는 ‘애국주의’ 동원으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할 수 있다. 얼마나 이 나라 국민들은 ‘애국’이라는 레토릭에 약한가. 거기에 더해서 북한이 미사일이라도 한 방 날리게 되면 집권세력은 호재를 얻는 꼴이 된다. 우리는 애국과 매국으로 대결국면을 만들어내려는 그런 구도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정세를 관통하는 본질을 제대로 잡아나가야 한다.
다가오는 3월에 할 일
정부는 국가인권위원회 30% 인력 감축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고 한다. 정부와 달리 독립기구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은 채, 다른 정부부처도 하지 않는 큰 폭의 인력 감축을 하려는 것은 국가인권위원회를 약화시키겠다는 것이다. 특히나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시행을 바라는 장애인 단체를 비롯한 소수자단체 등 인권단체들은 저항할 수밖에 없다. 인권운동진영은 용산투쟁의 진상규명-책임자 처벌 투쟁과 함께 재개발을 둘러싼 주거권 의제 제기, 교육권, 노동권과 같은 생존권적 기본권을 옹호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와 함께 급속도로 독재화되는 통치구조와 권력의 폭력성을 제어하기 위한 종합적인 대응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 봉쇄된 표현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한층 강화된 저항이 용산투쟁과 결합되어 전개되어야 하지 않을까. 참으로 할 일 많은 3월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
덧붙임
박래군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