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스스로’ 권리찾기
우리는 ‘무슨무슨 사각지대’ 하면 떠오르는 노동자가 있음을 안다. 이름하여 불안정노동자, 정치경제학적 개념으로 말하자면 소위 상대적 과잉인구이다. 완전실업․반실업 상태에 있는 이들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임시노동자, 일용노동자, 간접고용노동자, 비정규노동자, 불안정노동자, 주변부노동자, 실업노동자 등등. 이들은 일할 권리에서, 노동3권에서, 생활권에서 여전히 그리고 점점 더 배제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뭉쳐 10월 26~28일 “민중복지와 노동자생활권 쟁취를 위한 연대한마당”을 펼친단다.
장애노동자는 ‘장애인 의무고용 확대’, 이주노동자는 ‘연수취업제 폐지’, 비정규노동자는 ‘비정규직 철폐․노동법 개악저지’, 실업노동자는 ‘안정된 일할 권리’, 산재노동자는 ‘완전한 보상․재취업 보장’ 등 각각의 노동자가 처한 현실에서 제기되는 특수한 요구도 있지만, 이들 모두가 힘주어 주장하는 것은 ‘일할 권리’, ‘노동3권 완전보장’, ‘근로기준법 준수’이다. 참으로 익숙한 구호다. 그야말로 노동자의 기본권이 아닌가.
물론 이것이 모두는 아니다. 산재보험이나 고용보험을 중심으로 복지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무엇보다 ‘노동권’을 강조하는 것은 넓은 의미의 노동자생활권으로 나아가기 위한 초석이 구비되어 있지 못한 현실을 반영한다. 그러나 노동권의 기초조차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불안정노동자들이 모여 노동권을 넘어 생활권을 찾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제는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당당하게 선언’하고 ‘스스로 찾아’ 가겠다는 말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 한마당을 충분히 주목해야 한다.
이 사회는 노동자들이 모든 권리에서 점점 배제되어 가는 것과 비례하여, 소수의 자본가에게 더욱더 부가 집중되고 있다. 이게 소위 빈익빈부익부 아닌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생산력은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노동자․민중은 왜 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가. 장시간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있는 한켠에 왜 단시간노동자와 실업노동자가 증가하고 있는가. 노동시간이 단축된다지만 살인적인 노동강도는 왜 나아질 전망이 안 보이는가. 이유는 하나다. 사회적으로 축적된 부를, 자본은 소수자본(가)에 집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동자를 자르기 때문이다. 신기술 도입으로 노동이 편해지기보다는 일자리가 불안정해지거나 아예 노동에서 배제되는 사태를 우리는 일상적으로 경험한다.
사회적으로 축적된 부는 사회로 돌려져야 한다. 이 사회의 어느 구성원도 사회적 필요노동시간만큼의 노동을 통해 생존할 권리를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권리가 박탈되는 유일한 이유는 자본의 탐욕이다. 이 탐욕을 제어하고, 그만큼을 노동자․민중의 혜택으로 돌려내는 것, 부를 사회화시키는 것, 이것이 복지의 출발이다. 10월 말, 불안정노동자의 권리선언에 귀기울이자.
(김혜란 씨는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사무처장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