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복장, 속옷 색깔도 맘대로 안 돼
아침 등교 길, 한 줄로 서있는 선도부들 뒤로 선생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학생들은 항상 자기검열을 하게된다. '머리가 너무 긴 건 아닌지, 양말, 신발은 괜찮은지, 명찰은 착용했는지..' 그러다 하나라도 복장 위반에 걸리게 되면 교문은 곧 지옥문이 된다.
머리가 길면 왜 안 돼요?
'△남학생의 경우 스포츠나 상고머리형 여학생의 경우 한갈래로 묶는 머리 △검정색 고무줄이나 고무밴드와 그에 크기와 굵기에 준하는 검정색 끈 △학생신분이 손상되지 않는 범위에서 무늬와 장식이 없는 보편적인 검정색 단화 단벌교복에 똑같은 학생용 구두와 운동화를 신고 똑같은 가방을 들던 시대의 학생을 연상시키는 위의 규정은 2001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용의복장 규정이다.
그런데 이러한 규제의 내용이 '어떤 근거로 만들어졌는지' 합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어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 교육청 게시판에서 글쓴이가 준인 ㅎ고 학생은 "다음주 월요일에 규정에 맞지 않으면 머리를 자른다고 합니다. 정말로 머리가 길면 왜 안 되는 걸까요? 단지 눈살을 찌푸리는 몇 사람 때문에?"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규정으로서 당연히 갖춰야 할 최소한의 설득력도 없기 때문이다.
'학생다움'으로 행해지는 폭력
대부분의 학교 용의복장 규정에는 '단정하지 못한', '흉한', '유행에 민감한' 등 객관적이지 못한 잣대들이 '학생신분에 맞는'이란 전제 하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학교마다 학생다움의 기준이 달라 '고무줄 규정'에 불과하다. 어떤 학교에서는 구두를 신는 것이 학생답고 어떤 학교에서는 학생답지 못하다. 결국 '학생다움'의 잣대는 학교에게 학생들의 용의복장에 대한 무제한적이고 강압적인 규제를 의미할 뿐이다.
교육청 게시판을 통해 "수업시간에 느닷없이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머리를 자르고 나가시는게 아니겠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머리를 잘리는 느낌 아십니까?"라고 쓴 ㅈ고의 박OO군의 고통스러운 호소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외에도 용의복장 규정에는 머리핀의 길이와 굵기의 cm까지 지정하고 있을 정도로 세세하고 까다로운 규정들이 많다. 심지어 속옷의 착용유무를 비롯해 속옷의 색깔과 형태까지 규정하고 있어 학생들의 '프라이버시'나 '자기결정권' 같은 말을 꺼내는 것이 무색할 정도이다. 더 심각한 것은 아이디가 hana988인 한 학생의 항의처럼 "용의 복장을 검사하는 과정에서 교복치마를 들춰 속치마까지 검사하고…. 상의속까지 검사하는 학교의 행위"이다. 이는 개인의 존엄성에 대한 명백하고도 위법한 공격과 침해이다.
결국 학교는 '처벌의 압력'을 통해 규정의 준수를 요구하고 있다. 합리적인 근거와 민주적 절차를 수반하지 않은 용의복장 규정을 적용하기 위한 통제가 '강제적인 머리깍기'나 '속옷 검사' 등의 무리수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