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사측의 불성실 교섭에 경종
병원, 지하철, 한국통신 등 필수공익 사업장의 정당한 파업을 ‘합법적으로’ 가로막아 왔던 직권중재제도가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올랐다.
19일 서울행정법원 제4부(부장판사 조병현)는 필수공익 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제도의 근거조항인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아래 노동관계법) 제62조 2항 및 75조의 위헌 여부에 관한 심판을 제청했다. 특히 이번 위헌제청은 직권중재제도가 합헌이라는 96년 헌법재판소의 견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어 주목된다.
재판부는 중재로 인하여 쟁의행위가 금지되고 중재재정에 구속력을 부여하는 중재제도는 “노사관계의 당사자 사이에 그들의 분쟁을 중재에 의하기로 하는 합의”에 기반해야 한다며, “강제중재제도는 노사자치주의와 교섭자치주의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사전적인 강제중재 제도에 대해 “쟁의행위의 방법, 파급효과 등을 추상적으로만 판단하여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봉쇄”해 “단체행동권을 사실상 박탈케 함으로써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게 된다”고 밝혔다.
현행 노동관계법에 따르면, 필수공익 사업장의 노조는 파업 전에 15일간의 조정기간을 거쳐야 하며, 이 기간 동안 중재에 회부되면 다시 15일간 쟁의행위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또한 중재회부 이후 중재재정이 내려지게 되면 이를 반드시 따라야 하기 때문에, 필수공익 사업장 노조의 경우 파업할 기회를 아예 박탈당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재판부는 사용자들이 직권중재제도가 있음을 고려하여 노사협상에 성실히 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에 따라 노사간의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강제중재 회부결정이 있고 나면 이후 행해진 쟁의행위는 그 자체로 불법 쟁의행위”가 되기 때문에, 사용자가 손쉽게 노조측에게 손해배상, 업무방해 등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파업 이후에도 긴급조정결정에 따른 강제중재가 가능하고 불법 쟁의행위 여부를 사법부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직권중재제도가 없으면) 무분별한 쟁의행위가 이루어져 공익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우려”라고 설명했다.
이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김선수 변호사는 “이번 법원이 위헌을 결정하게 된 것은, 과거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이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점을 법원이 인정한 셈”이라며, “헌법재판소가 이러한 결정의 취지를 존중해서 위헌결정을 내리길 바란다”고 밝혔다.
직권중재 제도는 과거 지하철 노조나 한국통신 노조에 대해, 올해의 경우 한전기공 노조에 대해 적용됐으며, 병원노조의 경우에는 매년 직권중재에 회부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한통계약직노조 등 조정기간 중 중재에 회부되지 않고 조정이 종료되어 합법적인 파업이 가능한 경우도 극히 예외적으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