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간의 사랑이나 성행위는 에이즈 등 각종 부작용을 일으키는 불건전한 성문화의 하나이다” 99년 동성애자 33명이 교육부가 발행한 위와 같은 ‘윤리’와 ‘교련’ 교과서의 내용에 대한 수정신청서를 제출한다. 교육부는 2천년 개정 발행되는 교과서에서는 이 내용을 삭제하기로 약속한다.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라 함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적 지향을 이유로 …우대, 배제, 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말한다” 2001년 제정된 국가인권위법은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을 이와 같이 금지하고 있다.
교과서와 같이 국가인권위법과의 천지 차이는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담론이 비약적으로 성숙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동성애자에 대한 일상적인 ‘상식의 폭력’은 여전하다. ‘자신과 다름’을 이유로 동성애자를 인격적으로 모독하고 비난하고 더 나아가 배제하고 격리하는 ‘다수의 폭력’은 동성애자들이 꼭꼭 숨어서 세상으로 나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어한다.
이런 현실에 대한 변화의 희망도 한편에는 존재한다. 한국사회에서는 1993년을 즈음하여 지식인들 사이에서 동성애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초기 동성애자 인권단체들이 조직되었다. 95년 6월 ‘한국동성애자단체협의회’의 발족, 97년 노동자 총파업 집회의 무지개 깃발 등장, 98년 퀴어 영화제, 2000년 홍석천 씨의 커밍아웃, ‘침묵은 죽음’이라며 국내 최초로 열린 동성애자들의 자긍심 퍼레이드와 퀴어 문화 축제 등이 이어졌다. “자유롭고 인간답게 살려는 것”이라는 동성애자들의 ‘드러내기’와 일련의 투쟁은 성적소수자의 인권문제를 중요한 인권의 화두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