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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민간인 학살 문제, 방치하지 마라"

한국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촉구


"학살의 그늘 반 백년, 살아남은 자들은 입도 뻥긋 못하고 살아왔다. 이유 없이 끌려가 개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척 살아왔다. 이러한 야만의 땅에서 어떻게 감히 인권을 논하며, 진실과 정의와 역사를 말할 수 있겠는가!"

최근 영국 BBC방송의 다큐멘터리 방영으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에 대해 다시금 사회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아래 범국민위)는 4일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전 전후 모든 민간인학살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범국민위는 "최근 방영된 BBC방송의 다큐멘터리 <다 죽여버려>는 노근리를 비롯한 수많은 미군의 민간인 학살이 '우발적인 결과'가 아니라 '명령에 따른 계획적인 학살'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며 "미국은 이제 더 이상 민간인 학살을 축소 은폐하지 말고, 잘못을 사죄하라"고 주장했다. 또한 범국민위의 김동춘 사무처장은 "BBC 방송이 이번에 공개한 내용은 한국전쟁 전후에 자행된 수많은 학살의 극히 일부분"이라며 "정부는 한국전쟁 전후의 모든 민간인학살 사건의 진상을 주체적으로 조사하라"고 요구했다.

범국민위에 따르면, 미군에 의한 집단학살은 한반도 남쪽 땅에서만도 60여곳이 넘는다. 또 미군의 지휘 하에 있던 한국군 혹은 경찰, 우익단체에 의한 민간인학살도 경북문경 석달마을, 전남 함평, 경기도 고양금정굴, 경북칠곡 신동재 등 무수한 지역에서 일어났다. 범국민위의 신혜영 간사는 "미국과 한국 정부가 한국전 관련 자료들을 공개한다면, 아직 드러나지 않은 민간인 학살의 실체가 더 분명히 밝혀질 것"이라며 "진실규명을 위해 양국 정부가 관련 자료들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범국민위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아래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하는 것이 진실에 가까이 다가서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 소속의 독립 위원회를 설치해 1948년부터 1953년까지 발생했던 민간인 학살 사건을 조사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특별법은 지난 해 9월 6일 김원웅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47명의 공동 발의로 국회에 제출됐으나, 아직까지 해당 상임위인 행정자치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김 사무처장은 "최소한 2월내에 상임위에서 법안에 대한 본격 논의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행정자치위 소속 한 의원실의 관계자는 "우리 국군의 문제 때문에 민감하니까 미루자고 얘기가 돼서 지난해에 다뤄지지 못했다"며 오는 25일에는 행자위에 안건으로 상정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 후 채의진 문경유족회 회장, 이만순 마산 곡안리 유족 등 참석자들은 미 대사관과 청와대, 민주당, 한나라당에 민간인 학살 축소·은폐에 대한 항의서한과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에 대한 촉구서한을 각각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