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4월 광주사회조사연구소는 전국의 성인남녀 1439명을 표본으로 5․18 진상규명 문제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한 바 있다.
그 결과, 설문응답자의 72.5%가 "5․18 진상규명이 미흡하다"는 답변을 했다. 바로 한달 전(97. 3. 16) 대법원의 최종판결을 통해 광주학살 범죄자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마무리됐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들은 여전히 5․18의 진상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그리고 반드시 밝혀내야만 하는 5․18의 진상은 무엇인가?
▣ 발포책임과 살상경위
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 사이 자행된 시민학살과 관련,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발포명령자를 비롯한 살상의 책임자와 경위를 밝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법원 확정판결에 이르는 과정에서도 최초의 발포명령자와 발포경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현장에서의 살상의 지휘체계와 각 실행자의 구체적 역할 분담 내용도 규명되지 못했다.
결국 "공수부대원들이 왜 그토록 잔학한 행위를 하게 되었는지", "누가 그들을 살상과 잔혹행위로 내몰았는지" 등 시민살상을 둘러싼 핵심적인 의문은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시민살상의 책임과 경위를 밝히는 일은 또다시 발생할지도 모를 유사사건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과제다.
사법부의 판결을 통해 학살의 최고 책임자에 대한 법적 처벌은 이뤄졌지만, 당시의 현장지휘관 및 잔혹한 인권유린 행위를 했던 사병들의 책임을 밝히는 문제는 간과된 것이 사실이다.
공소시효 문제 등으로 인해 그들에게까지 법적 책임을 묻기는 힘들더라도 '역사적 단죄' 만큼은 반드시 진행되어야 했다. 이를 통해, 지시에 따르는 하급자는 어떠한 행위를 하더라도 무조건 면책될 수 있다는 의식도 뿌리뽑아야 하는 것이다.
▣ 헬기에서의 무차별 사격
5․18 현장을 직접 체험한 아널드 피터슨 목사(54․미국 일리노이)는 "5월 21일 오후 3시 15분쯤 광주 상공에 전투 헬리콥터 몇 대가 나타났고, 그들은 도시 상공을 날아다니면서 거리에 있는 군중을 향해 오후 내내 총을 쐈다"고 증언했다<시사저널 95년 4월 12일자 참조>.
피터슨 목사 외에도 수많은 목격자들이 헬기사격 사실을 증언해 왔지만 그 진상 역시 규명되지 못했다. 헬기에서의 사격은 특히 살상의 무차별성은 물론, 진압작전의 성격을 드러내는 중요한 열쇠 가운데 하나로서 반드시 규명되어야 할 사안이다.
▣ 집단학살과 암매장
5․18과 관련, 빼놓을 수 없는 과제 가운데 하나가 집단학살과 암매장의 진상을 밝히는 일이다.
5․18 희생자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억울한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해원을 위해서도 이 문제 만큼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대표적으로 ▲광주-화순간 도로 일원(주남마을)의 학살 ▲송암동 양민학살 ▲교도소 학살 등 세 곳의 학살 사건에서만 최소 89구의 사체가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면, 망월동에 안치된 무연고 희생자의 묘는 11기에 불과하다. 사라진 사체는 어디에 묻혀 있는가?
진실에 대한 알 권리는 장차 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라고 한다. 유엔인권위의 '과거의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청산원칙'은 "법적 구제절차와는 상관없이 피해자와 그 가족은 진실을 알 권리를 갖는다"고 선언하고 있다. 나아가 진실을 알 권리는 피해자의 것일 뿐 아니라 전체 국민의 것이기도 하다.
# 자료참조
「12․12와 5․18 재판 결과에 대한 법리적 분석」(한인섭 서울대 교수)
「대법원 제출 5․18 사실관계 자료
인권하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