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파주이전 약속 이행 요구 … 회사는 꿈쩍도 안해
희망자 모두의 파주공장 이전을 요구하며 320여일 넘게 파업을 진행해 온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이 10일부터 명동성당에서 노숙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어젠 밤늦도록 비가 와서 추웠어요. 하지만 배 고픈 건 아직 참을 만 해요." 11일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만난 조합원 김소영 씨는 까칠한 얼굴로 말했다. 10일 밤엔 성당 처마 밑으로 비를 피했지만, 그 곳에도 여전히 비가 들이치긴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래도 1년 전 같이 싸움을 시작했던 사람들이 계속 옆에 있다는 게 큰 힘이 돼요." 이번 단식 농성 참가자의 숫자는 64명. 임산부나 산후 휴가 중인 사람,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 등 30명 남짓을 제외하고는 모든 조합원이 단식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김 씨는 "다들, 회사가 너무 한 것 아니냐, 어떻게 이런 상황까지 오게 만들 수 있냐고 얘기하죠."라며 조합원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1년 가까운 투쟁 끝에 가까스로 지난 1일 영풍그룹 관계자를 노조와의 면담에 응하게 했지만, 회사 측은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면담에서 영풍그룹 한두훈 부사장은 '시그네틱스가 알아서 잘 풀어갈 것'이라며 그룹 차원의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고, 시그네틱스의 양수제 사장은 '파주 이전은 수용 못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노조의 임은옥 교육선전국장은 전했다.
98년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했을 때, 노동자들은 임금동결, 상여금 반납 등 고통을 분담했고 서울공장을 팔아 빚을 갚으면 파주공장으로 이전한다는 회사측의 약속을 철썩 같이 믿었다. 그러나 2000년에 시그네틱스를 인수한 영풍그룹은 이같은 약속을 계속 나몰라라 해 왔다.
지난 해 7월 23일 파업에 돌입한 이후 겪은 시련은 노조간부들의 구속기소, 조합원 91명 임금 가압류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 달 29일부터 이틀 간의 한강대교 고공시위 이후, 임영숙 부지회장과 윤미례 사무국장 역시 구속됐다.
임은옥 교선국장은 "조합원들은 11개월 째 임금을 못 받고 있는데, 그 나마 2월 내지 3월부터 일당 만오천원 꼴로 받던 실업급여도 얼마 안가 끊길 형편"이라고 말했다. 한때 회사측이 강제로 철거했던 어린이집은 다시 복구됐으나, 보육교사들은 현재 회사로부터 임금도 받지 못한 채 만 1세에서 6세까지의 노동자들의 어린 자녀 약 24명을 돌보고 있다.
"살기 위해, 안정된 일자리 보장하라고 싸우는데, 밥 안 먹고 농성하는 건 모순인 것 같죠?" 임 교선국장은 그만큼 절박하다고 했다. 회사 쪽은 꿈쩍도 안 하니, 웬만한 각오를 가지고는 안된다는 거다. "어서 잘 됐으면 좋겠어요. 회사가 파주공장 이전 약속을 이행하고 우린 고용 안정되고…"라고 말하는 김 씨의 얼굴에 비 개인 후 쨍쨍한 햇볕이 내리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