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위, 박정희 정권 개입사실 밝혀
9일 의문사진상규명위(위원장 한상범, 아래 의문사위)는 71년 '목포지역 선거 공작수사' 과정에서 의문사한 김창수 씨 사건의 진상을 발표했다. 당시 목포시 대성동 선거관리 부위원장이던 김씨는 공화당 후보가 패한 목포지역 국회의원 선거를 무효화시키기 위해 박정희 정권이 공작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열차에서 추락사했다는 것.
의문사위에 따르면, 71년 5월 목포지역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가 당선되자, 공화당은 부정선거라고 주장하고 박 정권은 검찰에 수사를 지시했다. 이에 목포경찰서 김영근 경위와 광주경찰서 김병두 순경은 김씨를 20여일 동안 회유·협박해, 같은 해 6월 20일 끝내 김씨로부터 '개표 당시 허귀남 씨 등 신민당 참관인들이 투표용지 1백 매를 절취, 부정투표를 했다'는 허위자백을 받아냈다.
다음날 밤 김 경위 등은 서울에서 조사를 받던 허씨와의 대질심문을 위해 김씨를 강제연행, 열차에 올랐다. 하지만 김씨는 22일 아침 6시경 전북 김제역 근처 철로 부근 논에서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는 상태로 발견됐고, 의식불명 상태에서 25일 아침 11시경 사망했다. 이 직후 목포경찰서와 광주지검 목포지청은 김씨가 취중에 발을 헛디뎌 열차에서 추락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재수사에 착수했던 광주고검 목포지청은 김씨가 열차를 탈출하다 추락사한 것으로 서둘러 종결했다.
반면 의문사위는 국과수 이민규 등 국내외 법의학자 3명의 일치된 재감정 결과를 근거로, "김씨가 추락에 의한 손상과 외력에 의한 손상이 함께 작용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는 추락 이전 폭행 및 타의에 의한 추락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히 "김씨의 머리 부분에 동일한 크기로 손상된 곳이 3군데 있다"며, "이는 도저히 추락에 의한 상처라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정황과 법의학 소견을 통해 타살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해 (타살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며, "타살의 과정과 타살자, 타살을 지시한 자 등의 조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라고 조사의 한계를 호소했다.
하지만 의문사위는 △김씨에 대한 수사 과정 △김씨의 열차탑승 과정 △김씨의 열차이탈 과정 모두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김씨가 권위주의 정권에 직접 항거하기 위한 정당이나 사회단체 활동을 한 사실이 없다 할지라도, "권위주의 정권시절 부정·탈법 선거를 감시하고 올바른 투·개표 업무가 진행될 수 있도록 종사한 활동은 민주주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활동으로 판단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며 민주화운동과의 관련성도 인정했다.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이은경 사무처장은 "박 정권 시절 정권유지를 위해 국가권력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밝혀내진 못했"지만 "적극적 항거가 아니라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 전향적 해석"이라고 의의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