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후속모임에서 각 영역별 운동이 갖고 있는 총선 대응 고민들을 나누고 이를 연결하고 아우르며 인권운동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힘을 북돋으며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 총선과 그 이후까지 이어지는 한층 더 단단한 네트워크를 만들 기회가 될 것을 주요한 목표로 삼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총선이라는 현실정치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하려는 인권운동이 정치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인권올리고당'*이 시작되었다.
인권을 기초로 한 정치, 인권올리고당
총선이 한 달 남짓 남았다. 현수막이 거리 곳곳에 나붙었고, 테러방지법이라는 어마어마한 인권침해적 법안이 ‘총선 때문에’ 통과되었다. 물론 이 법을 막기 위해 그동안 인권단체들이 끊임없이 야당에 어필해왔지만 그동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건 잠시 넣어두더라도.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이종걸 원내대표에게 “이러다가 선거 망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라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이어서 여기서 더 하면 선거가 이념논쟁으로 간다며 경제문제로 프레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했단다. 그렇다. 선거 시기가 되면 모든 것은 이 뒤로 밀려나는데, 그렇다면 선거 때 남는 것, 남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누구를 위한 선거이고 투표인가. 왜 선거는 이념 논쟁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야당이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는 동안 국회의원석은 텅텅 비었지만 방청석은 빼곡히 들어차기도 했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 필리버스터’가 응원을 받으며 이어지고 있었고, 몇몇 사람들은 이러한 소통방식을 ‘참 정치’라 표현하기도 했다. 민주주의는 죽지 않았다고 기뻐했다. 심지어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선물을 하는 것을 ‘조공’이라 표현하기도 하는데, 어떤 네티즌은 살다 살다 국회의원들에게 조공을 보낼 줄이야, 라며 필리버스터를 이어가느라 함께 고생하고 있을 당직자들에게 간식을 보내고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테러방지법을 반대하고, 필리버스터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총선’이라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두 글자에서 모든 게 멈춰버렸다.
인권의 정치
멈췄던 곳에서 다시 시작해보자.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압승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것은 무능한 야당에 대한 실망만을 이유로 두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여야 할 것 없이 청와대 눈치 보기 바쁘고 ‘정책’을 가지고 토론하기 보다는 ‘정부가 밀어붙이는’ 정책을 뒷받침하고 밀어주는 법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테러방지법만 보더라도 야당 없이 재석 157명 중 찬성 156명, 반대 1명으로 가결되었다. 이렇듯 정당정치가 의미 있게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인권운동의 의제별 정책 제안이나 협약 등으로는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기 어렵다. 우리의 주장과 요구 역시 기존의 틀을 벗어나 다시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란 무엇이며, 한국 사회는 과연 민주주의 사회라 할 수 있는가? 이 사회는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선거운동기간 2주 남짓, 아주 잠깐 사회의 구성원으로 대접받다가 당선되고 나면 나 몰라라 내팽개쳐지는 우리의 권리는 어디에서 찾아올 수 있을 것인가. 특히 혐오 세력들이 본격적인 혐오 선동의 장으로서 선거를 활용할 것이 명백한 현 상황에서 ‘인권’의 전선을 쳐야 한다면 그것은 분명 ‘반차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원칙을 가지고 굴복하지 않으며 끝까지 싸울 사람과 정당을 확인하는 것이 이번 선거의 목표가 된다면 어떨까. 또한 절대 국회로 가선 안 되는 인물을 꼽아보는 반대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덫에 걸린 정치를 인권의 힘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4월에 있을 총선에서 사람들의 선택에 인권의 정치가 손톱만큼이라도 파고들 틈을 내는 것, 인권 올리고당의 첫 번째 목표는 정치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연결고리 만들기
다양한 운동진영에서 총선대응을 위한 단위들이 꾸려졌다. 흙수저당, 농민당, 비정규직철폐당의 연합형태로 ‘민중정치연합’이 창당했고, 노-농-빈 총선공동투쟁본부가 발족했다. 총선시민네트워크는 기억, 심판, 약속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내걸고, 시민단체와 시민들의 제보를 수렴하여 정한 낙천명단을 공개할 예정이며, 총선 쟁점과 정책을 공론화 하고 후보자, 정당에게 이행을 서약하게 하는 약속운동, 국가기관 선거개입 감시운동, 투표참여 운동 등을 전개해나갈 것이라고 한다. 여러 단위들이 각자가 주목하는 것들에 집중하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혐오선동세력들이 혐오 로비를 하면서 광장으로, 공론의 장으로 자신들의 공간을 넓히고 있다. 총선이 최대의 분수령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우리가 주요하게 집중해야 하는 것도 네트워크의 촘촘한 강화이다. 국회 뿐 아니라 그 어디에도 혐오가 발 딛고 설 곳이 없음을 명확히 하고, 혐오가 작동하지 않는 공간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운동단위들과의 따로 또 같이하는 연대가 필요하다.
한 표의 의미
문득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현재 한국 사회에 정치적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은 존재하는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의 힘이 전혀 통용되지 않는 지금, 경찰은 평화마저 준법과 합법의 영역으로 가두려 하고 있다. 심지어 광장에 모이는 것 자체가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위협하는 것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사회 구성원의 다양하고 자유로운 표현의 방식들이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위축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번 ‘투표’는 각각의 가벼운 한 표가 아니라 더욱 많은 대중들을 정치의 주체로 불러 세울 무거운 한 표여야 한다.
과정 중에 있는 권리
정정훈이 쓴 『인권과 인권들』의 말을 빌리면, 인간의 권리는 시간의 흐름과 상황의 변화와 무관하게 그 본질적 규정이 유지되는 이데아와 같은 권리가 아니라 정치적 실천이라는 활동에 의해 그 의미가 끊임없이 변경되고 재구성되는 ‘과정 중에 있는 권리’(right in the process)이며 하나의 원리로 환원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권리들의 다양체를 표시하는 이름이다. 그렇다면 ‘인권의 정치’란 제도 속에서, 왜곡된 맥락 속에서 오염되었던 ‘인권’이라는 언어를 정치적 주체로 나서려는 모든 사람-유권자라 표현되지 못하는 청소년들도-들이 새로이 구성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표를 가진 한 개인이 그 권리를 어딘가에 맡기는 것이 아닌 다양한 정치적 주체들이 모여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할 때 과정 중에 있는 권리로서 인권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올리고당은 총선으로 비롯된 고민들이 모여 시작된 것이지만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인권올리고당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인권운동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인권올리고, 차별내리고_총선을 들여다보는 인권 돋보기’라는 가이드를 펴낼 예정이다. 이 가이드는 인권에 투표하자고 말한다. 선거 공보물에는 나오지 않는 진짜 이야기들이 담긴다. 가이드를 통해 우리 동네 후보자와 정당들이 내건 공약이 우리의 삶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지 선거 너머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김의겸, 이세영, “김종인 “선거 망치면 책임질거냐” 이종걸에 고함”, 한겨레, 2016.03.01.
덧붙임
이은정 님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