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넘쳐나는 ‘인권’이라는 말 속에서 우리는 무엇에 주목하고 어떤 이야기를 이어가야 할까요. 함께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매주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논의하고 [인권으로 읽는 세상]을 씁니다. 기사 제휴를 통해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텔레그램 성착취방 신상공개 요구가 향하는 곳
텔레그램에서 진행된 대규모 성착취 사건에 대한 분노가 높습니다. 60여 개에 이르는 대화방에서 26만 명의 참여자가 성착취에 가담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공분이 26만 명에 대한 신상공개 요구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상공개 요구는 단순히 신상만을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불처벌의 역사를 써온 수사기관과 사법부, 분노에 찬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아온 국회와 언론이 함께 변해야 합니다. 신상공개가 국가의 책임을 면피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코로나19와 애도의 부재
코로나19로 인해 1만 명이 넘는 확진자와 2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으나, 이들에 대한 공감과 애도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과 감염되지 않은 사람 모두가 코로나19라는 재난을 함께 겪고 있지만, 감염자를 강하게 제재하는 정부 정책이 서로의 연결을 끊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회적 애도가 세상을 바꿔왔다는 점을 떠올리며 지금 다시 기억과 애도를 제안하는 이유입니다.
정치는 정당만의 몫이 아니다
21대 총선 결과에 대한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권운동은 언제까지 선거 결과에 대한 관전평만 반복해야 할까요. 시민사회운동은 지금까지 부적격 인사 낙선운동과 정책 평가 등 나름의 방식으로 선거 시기에 개입해왔지만, 그 영향력은 점점 떨어져왔습니다. 이는 후보자 개인이나 개별 정책에만 집중하는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책의 내용만큼이나 그를 실현시킬 정치 세력이 중요하다면, 운동 역시 정치 세력을 조직하는 역할을 제도 정치의 몫이라며 외면할 수만은 없습니다. 정부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21대 총선 이후 시민사회운동에 남은 과제가 큽니다.
집회 금지가 코로나19 때문일까
2월 말부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이유로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들은 집회 금지 고시를 발표해왔습니다. 하지만 감염병 예방은 집회를 가로막는 여러 핑계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권력기관 부근에서 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 11조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지만, 국회에서 논의중인 개정안은 여전히 전면적 허용이 아니라 예외적 허용을 말합니다. 경찰은 소음 규제를 강화하는 집시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습니다. 이처럼 공권력이 용인하는 한도 내에서만 집회를 허용하는 방식이 집회시위의 권리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제대로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방역 정책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집회에서 외치는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야만 합니다. 집회시위의 권리를 보장하고 북돋는 공권력의 역할을 다할 것을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