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와 시위에 자유에 관한 본질적 이해가 결여된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는 한정위헌 판결문에서 ‘시위’를 “다수인의 집단적인 행동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의사표현의 경우보다 공공의 안녕질서 등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크고, 일반적으로 집회나 옥외집회보다 공공의 안녕질서, 법적 평화 및 타인의 평온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규정하였다. 또한 “야간의 시위는 주간의 시위보다 질서를 유지시키기가 어렵고, 예기치 못한 폭력적 돌발상황이 발생하여도 대응이 어렵다”고 하며 야간의 시위를 금지하는 것은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고 시민의 주거 및 사생활의 평온을 보호하기 위한 적합한 수단이라고 판결하였다.
그럼에도 헌법재판소에서는 동절기의 평일에 직장인이나 학생은 시위를 주최하거나 참가할 수 없으며, 현대 사회에서 ‘야간’의 의미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라는 가변적 시간대로 볼 수 없어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됨으로 24시 이전 시위는 허용해야 한다 결정하였다.
이와 같은 헌재의 결정은 2003년 헌재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로운 인격발현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우리 헌법질서 내에서 집회의 자유도 다른 모든 기본권과 마찬가지로 일차적으로는 개인의 자기결정과 인격발현에 기여하는 기본권이다. 뿐만 아니라, 집회를 통하여 국민들이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집단적으로 표명함으로써 여론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집회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와 더불어 민주적 공동체가 기능하기 위하여 불가결한 근본요소에 속한다(헌재 2003.10.30. 2000헌바67)”로 바라보았던 점과 차이를 보인다.
2003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집회의 자유가 개인의 기본권을 넘어 민주적 공동체가 기능하기 위한 불가결한 근본요소로 바라봤다. 하지만 이번 결정에서 헌재는 민주적 공동체의 기능보다 법적 평화와 공공의 안녕질서를 더욱 우선시하였다. 즉 민주적 공동체가 기능하기 위한 ‘집회의 자유’가 법적 평화를 위협할 수 있기에 야간의 시위를 금지하는 것이 정당한 목적 달성을 위한 적합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집권 보수세력의 주장과 일치하는 헌법재판소의 ‘법적평화’
위와 같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집권보수세력의 주장과도 같은 결에 있다. MB정부에서는 통치이념으로 법치주의를 강조하였으며, 법치주의를 통해 시위나 파업, 저항을 강력히 진압하였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과제로 집회․시위 문화 개선을 이야기하였으며, 불법집회에 대해 강경히 대응하겠다는 기조를 내세웠다. 단지 집회의 자유만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진정한 소통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모두가 법을 존중하고 그 법을 지키고 법이 공정하게 적용․집행되는 사회라고 말했다. 또한, 소통은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주장이라도 적당히 수용하거나 타협하는 것이 아니므로 불법으로 떼를 쓰면 적당히 받아들이지 않고 원칙적으로 대응하겠다 이야기했다. ‘법’의 준수 여부가 소통의 핵심이며, 법적 평화를 통해 사회의 안정을 구현하겠다는 표현이다. 여기서 법적 평화는 헌법을 통해 누구나 평등한 권리의 주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법을 통한 평화, 법에 의한 통치를 말할 뿐이다.
‘집회․시위의 자유’와 민주적 공동체
민주적 공동체가 기능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현상에 대해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비판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민주적 공동체의 주체가 국회가 아닌 사회 구성원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비판은 ‘권력’을 만났을 때 똑같은 힘을 가지지 못한다.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회의원의 의사표현과 시민이 가진 힘의 차이는 명확하며, 자본가와 노동자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는 시민들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의사표현과 비판이 현실권력과 마주쳤을 때, 그들의 발언은 공허해진다. 힘의 차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비판은 권리로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현실권력에 대해 저항할 힘은 ‘결사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를 통해 가능하다. 개개인으로 흩어진 사람들의 의사표현이 집단화되고, 그들의 목소리가 거리에 울릴 때, 들리지 않던 목소리는 사회에 전달된다. 장애인 차별에 대해 어떠한 논의도 이뤄지지 않던 이 땅에서 장애인권활동가들의 집회․시위는 장애인차별금지법까지 이어졌으며, 노동자․철거민들이 거리에 나서지 않았다면 사회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실 권력은 이를 ‘갈등’을 양산하고 국론을 ‘분열’시킨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갈등’과 ‘분열’이 사회발전을 가로막기에 이를 떼법이라 지칭한다.
‘갈등’과 ‘분열’이 사회발전을 가로막는다는 현실 권력의 주장은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다. ‘갈등’과 ‘분열’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가진 자들의 놀이터에 불과하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가 집회․시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행위는 가진 자들의 놀이터를 우리의 놀이터로 만드는 정치적 행위이다. 정치는 국회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목소리가 곧 정치이고, 민주주의이다. ‘갈등’과 ‘분열’이 존재할 때에만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 중심의 사회로 사회체제가 변화될 수 있다. 현실 사회는 가진 자와 권력자들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이다. 그렇기에 ‘갈등’과 ‘분열’은 부정적 의미가 아닌 사회를 변화시키는 긍정적 힘이다.
야간시위 한정위헌결정을 넘기 위해 ‘정치의 힘’이 필요할 때
2010년 야간집회금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이후, 국회에서는 몇 번의 집시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당시 집권여당인 한나라당 조진형 의원의 집시법 개정안은 10시 이후 야간집회를 금지하려 했으며, 인권단체 등의 반대로 인해 통과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이후 새누리당 윤재옥 의원은 오전 0시부터 6시까지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하였으며, 같은 당 이재학 의원은 주요 문화제 주변의 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또한, 경찰에서는 집회 소음 규제, 불법집회 시 강경 대응을 발표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야간시위 한정위헌 결정에서 24시 이후 시위를 금지할 것인지 여부를 국민의 주거 및 사생활의 평온, 우리나라 시위의 현황과 실정, 국민 일반의 가치관 내지 법감정 등을 고려하여 입법자가 결정할 여지를 남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집권여당이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려 하는 상황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이와 같은 흐름에 가속도를 붙이게 될 것이다. 더욱더 거리의 정치를 만들어야 한다. 집회의 자유가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그것이 더욱더 많은 ‘정치’와 ‘민주주의’를 만드는 힘임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헌법의 가치를 지키고 확장하는 힘이 헌법재판소와 국회가 아닌 정치의 ‘주체’들에 있음을, 거리에서 ‘집회의 자유’를 확장하는 싸움을 통해 만들어야 한다.
덧붙임
훈창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