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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자의 눈> 21일 아침 320호 법정

물리학도, 주체사상에 관심을 가진 죄?

사건번호 ‘속행 다 2002노9958’. 21일 아침 10시 30분께 서울지법 320호 법정에 한 젊은이가 섰다.

인터넷에 북조선의 주장이 담긴 글 등을 올리거나 연동시켰다는 이유 때문에 7월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지난 9월 이적표현물 소지죄로 징역 1년 및 자격정지 1년의 형을 받은 컴퓨터 프로그래머 김아무개 씨다. 형사항소2부 재판장 김기동 판사는 무죄를 주장하는 변호인 쪽과 3년형을 주장하는 검찰 쪽의 항소 이유를 확인한 후 김씨의 재판을 진행했다.

검찰은 먼저 별도의 심문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이에 변호에 나선 박창수 변호사는 ‘김씨가 북한 주체사상에 관심이 많았지만, 이는 지적 호기심 때문이었지 북한을 찬양․고무하려는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씨가 북한 관련 서적을 소지하고 자료를 탐독하긴 했지만, 이것이 자유민주질서를 해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변론이 끝나자 김 판사는 “물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주체사상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86년 ㄷ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했던 김씨는 대학시절부터 주체사상에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김씨가 대학에 다니던 80년대 중반은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 박 변호사의 답변은 마무리되기도 전에 김 판사에 의해 가로막혔다. 김 판사는 “민주화에 관심을 갖는 것은 좋은데, 주체사상․이북 관련 서적을 탐독하는 건 문제 있는 거 아니냐?”라며, 김씨에 대한 선입견을 그대로 드러냈다.

재판은 김씨의 짤막한 진술로 끝을 맺었다. 김씨는 “인터넷의 특성상 쌍방향성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방적인 선전․선동이나 찬양은 어렵다”라며, “네티즌들은 특정 다수가 아니라 나름대로 자신의 견해를 가지고 있는, 자체적인 자정능력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북조선 관련 글들을 인터넷에 올린 행위가 국가의 존립이나 자유민주질서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는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찬양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라며, “앞으로는 좀더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라고 밝혔다.

김씨의 선고일은 다음달 3일. 김씨에게 어떤 형량이 내려질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단지 북조선 관련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김씨가 구속된 지는 벌써 4개월이다. 김씨는 자신의 행위가 검찰의 주장이나 1심 판결처럼 국가의 존립이나 자유민주질서를 위태롭게 할만한 행위였는지 아직도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리학도가 주체사상에 관심을 가지면 ‘이례적’이라고 생각하는 판사의 인권의식 속에서, 이 사회는 「북조선은 악, 남한은 선」이라는 뚜렷한 경계에 의해 폭력적으로 나뉘고 있었다. 이 사회에서 북조선에 우호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너무도 쉽게 신체의 자유를 유린당한다는 사실을 이날 320호 법정은 또 한번 보여주고 있었다.